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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홀로 사는 경우가 더 많다. 확고한 신념을 좇은 결과는 아니다. 앞으로 겪게 될, 지금은 알 수 없는 일로 뭔가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제까지 삶의 추이를 보면 앞으로도 웬만하면 쭉 1인 가구로 살겠거니 한다. 그러니 일단 이 삶의 형식 속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가꾸는 데 집중할 수밖에. 이 점은 나도, 그들도 같다. 차이점은 고양이 유무랄까? 나의 집에만 고양이가 없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1인 가구 모임을 가질 때, 깔깔 웃다가도 시간이 흐르고 이야기가 깊어지면 어두운 주제가 튀어나온다. 더 정확히 말하면, 깔깔 웃다가 어두운 이야기도 농담처럼 툭 던진다는 편이 맞겠다. 그래서 계속 웃게 된다. 심지어 죽음을 말할 때도. 고양이 집사들의 고양이 사랑에 크게 감탄하는 때이기도 하다.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지만 약을 먹으며 계속 고양이와 함께 사는 친구 A는 예전에 본 뉴스를 말하며 운을 뗐다. ‘1고양이 1인 가구’의 인간이 집에서 급사했고 며칠 지나 시신이 발견됐는데, 고양이가 시신의 얼굴 부분을 먹어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우리 애도 그러면 다행이겠다, 굶을 일 없을 테니’ 생각부터 했다는 말을 하며 보살같이 웃었다. 친구 B는 유기농 보살이었다. 한 술 더 떠, 우리 애에게 나쁜 것을 먹이면 안 되니까 언제라도 비상식량이 될지 모를 스스로에게 늘 유기농만, 좋은 것만 공급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고양이라는 존재가 돈 벌고 운동하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된다는 C는 가급적 밖에서 급사하고 싶다 했다. 시신 발견이 빠를 테고, 신분증을 확인하자마자 부모님께 연락 취할 테고, 그만큼 고양이에게 결핍의 시간은 짧을 테니.

사랑하는 ‘우리 애’ 자랑을 하는 이들이 행복한 것 같아 보기 좋았다. 흐뭇하게 지켜보며 생각했다. 역시 제 눈에 안경이다. 내 눈에도 웬만한 인간보다 고양이가 더 귀엽긴 하지만 심장이 아프고 막 그럴 정도는 아니던데. 친구들이 소셜미디어에 고양이 사진 올린 게 눈에 띄면 무덤덤한 얼굴로 ‘좋아요’ 누르고 금세 잊곤 했다. 굳이 같이 살 정도로 마음 움직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수입이 불규칙한 프리랜서로서, 스스로를 책임지기도 벅차다는 생각이 늘 있어 고양이에게 내줄 마음의 공간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보살핌이 있어야만 제대로 생존할 수 있는 여린 생명체의 보호자로 함께 살기 위해서는 다부진 책임감과 넉넉한 인내심, 무엇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다. ‘반려동물’을 살리기 위해 수백만원 턱턱 내는 능력자들을 보며 ‘리스펙트’ 했다. 훗날 나는 나를 위해 그 정도의 치료비를 팍팍 쓸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나 하나 적당히 추스르며 후회 없이 살다 가급적 지구에 해악 덜 끼치고 소멸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래도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르도록 점 하나 보태고픈 시민적 욕망은 있다. 얼마나 시민의식이 투철한지, 급사 뒤 내 시체가 오래 방치되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까 봐, 썩는 냄새에 이웃이 고통받을까 봐 사서 걱정한다. 그래서 빠른 시체 수습을 위해 사적 장치를 마련했다. ‘고독한 생존방’이 그것이다. 다른 말은 쓰지 않고 ‘ㅅㅈ(생존)’만 쓰는 채팅방이다. 게시판에 구성원의 주소가 등록되어 있어,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수요일 오전 11시~오후 1시) 안에 생존 신고를 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친구들도 이 방에 있다.

이처럼 나와 다른 ‘홀로’들은 다름을 존중하면서도 공통의 기반을 공유하며,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실행한다. 이게 우리에겐 일상인데, 사회에서는 아직도 1인 가구를 ‘현상’ 취급하는 모양이다. 명절 뒤의 들썩임을 보고 새삼 환기했다. 결혼 ‘못’한다며 인격모독까지 당했다는 증언들이 숱하게 쏟아진 것이다. ‘미혼’과 ‘저출산’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일부 언론의 논조도 지속되고 있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애나 개랑 살든, 혹은 고양이랑 살든, 그도 아니면 오롯이 혼자이든. 책임지기만 한다면, 구성원을 억압하고 착취하지 않는다면, 행복하고자 택한 타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자. 더 나아가 제도적 모색도 함께하는 동료 시민을 기대하면… 기대가 너무 큰 걸까? 최근 활발히 논의되는 제도로는 생활동반자법이 있다.

<최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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