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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연결된 불광천변을 걷다가, ‘래미안캐슬아파트’ 비슷한 이름을 가진 건물과 만났다. 언제 여기에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섰지, 하고 살펴보니까 아담한 오피스텔이었다. 별로 어울리지 않는 그 이름에 함께 걷던 친구와 잠시 웃었다. 하긴 래미안과 캐슬이 함께 붙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 곁의 빌라와 오피스텔들도 ‘○○거장메카’ ‘△△아트빌’ ‘□□리치하우스’ 등, 오히려 최근의 브랜드 아파트보다 더욱 화려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브랜드 아파트의 보급은 1999년 ‘삼성쉐르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성공을 거두며,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각 건설사가 저마다의 욕망을 가득 담은 각종 브랜드를 내놓았다. 가장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모 건설사의 CF 문구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것이었다. 공간에서 특별함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 특히 자신이 사는 곳의 이름과 자신의 품격을 동일시하는 풍조가 이때부터 널리 퍼져나갔다. 어느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한 개인과 그가 속한 가정이라는 소집단의 위상을 드러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00년대 중반부터는 기본 브랜드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서브브랜드를 붙여 ‘○○캐슬 포레스트’ ‘□□파크 메가트리움’ 등의 이름들도 등장했다. VIP에 만족하지 못하고 VVIP라든가 VVVIP 등의 V를 베리베리 더해가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설사들은 그 욕망을 부추겨 아파트의 분양에 활용했고 우리도 거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말았다. 이제는 초등학생들도 ‘빌거’와 ‘휴거’, 그러니까 아파트에도 못 사는 ‘빌라 거지’와, 휴먼시아 주공아파트에 사는 ‘휴먼시아 거지’로 서로의 계급을 구분해낸다.

나는 최근 쓴 책에서 브랜드 아파트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몇 가지 사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최근의 아파트 이슈 두 가지가 ‘브랜드 아파트로의 전환’과 ‘폐쇄형 아파트로의 전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선 ‘자곡포레 아파트’의 주민들이 시공사 측에 이름 변경을 요청해 ‘래미안 포레 아파트’가 된 것이 대표적이다. 폐쇄형 아파트는 그 이후 쟁점이 되었다. 폐쇄형 아파트란 정문과 후문 등 주요 출입문을 제외한 모든 외부를 투시형 담장 등으로 둘러싸는 방식을 말한다. 외부인의 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나는 모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사항이 공지된 것을 열람하기도 했는데, 그들이 커뮤니티에 일반검색을 허용해서 올려둔 것이라, 폐쇄에서 특별함을 찾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출입증 없이 그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자면, 모 아파트 단지의 입주자 대표는 “입주민과 인근 주민의 구분이 어려워 통제가 사실상 되지 않고 있고, 그래서 어린 자녀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으로 폐쇄형 아파트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안전과 생활권 보장이라는 대명제를 내세운 그는 결국 중요한 이유를 덧붙였는데,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우리 아파트의 자산가치가 150억~200억원 정도는 상승할 것이라고 합니다”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단절과 폐쇄를 선언하는 것이, 자신이 속한 공간의 자산가치로 이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타인을 배제하면서 특별함을 증명해 나가는 것이다. 이제는 나의 아이가 브랜드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를 찾아가려면 정문에서부터 사유를 설명하고, 해당 동 앞에 가서 친구를 호출하고, 다시 해당 호의 문 앞에 가서 초인종을 눌러야 한다. “민섭아 놀자!” 하는 목소리에 야구 글러브를 챙겨 “적당히 놀아라!” 하는 어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뛰어나가던, 1990년대 초와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약간 더 나은 안전을 담보받으며 그것으로 고작 아파트의 자산가치를 올리고, 정작 더욱 중요한 것을 잃어가고 있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브랜드 아파트뿐 아니라 오피스텔과 빌라 등 우리의 곁에 존재하는 모든 공간들이 특별해지고픈 욕망을 가득 담고서 이 도시를 구성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단어들에 잡아먹혀서는 안되겠다. 같은 브랜드의 타인들에게만 친절하고 다정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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