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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나의 작품을 읽은 글쓰기 선생님이 소설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물으셨고, 나는 인정했다. 사실은 그냥 분노 때문에 썼다고.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분노의 추동으로 글을 쓰면 안 된다고, 다크 포스를 잘 다스리지 않으면 다스베이더가 된다고 하셨다. 분노 없이, 냉정하게, 쓰려고 하는 이야기를 명확히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이셨다.
그 얘기를 듣고 나를 돌아보니 딱히 이유도 없이 내내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 화가 그대로 글쓰기에 투영되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조언을 구했고 한 친구가 감사일기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감사일기는 말 그대로 하루 동안 감사했던 일을 간단히 적는 것이다. 감사일기를 몇 달 쓰고나서 살아가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고 친구는 덧붙였다.
쓴다고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니 일단 한번 해보기로 결심했다. 살아가는 태도 자체가 달라진다는데 하루에 5분 정도 투자해볼 수 있지 않을까.
쉽고 간단할 줄 알았는데, 쓰려고 보니 감사한 일이 떠오르지 않았고, 마음이 꼬여 있어감사하기도 쉽지 않았다. 예컨대 이런 식. “버스기사님이 승객들이 모두 앉을 때까지 기다려주시고, 과속도 안 하시고 안전운행하신 덕분에 지각해 감사하다.” “짜장 곱빼기를 시켰는데 그냥 짜장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 덕분에 적게 먹어 다이어트가 되어 감사하다.”
쓰면 쓸수록 더 화가 나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썼다. 쓰다보니 꼬인 마음이 점점 풀어지고 단순하게 감사한 일에 감사하다고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가 행복한 사람이었다.
2020년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화를 안 내기가 쉽지 않지만, 분노를 잘 조절하여 화낼 필요 없는 일에는 화내지 않고, 그 화를 잘 모아놓았다가 필요한 때에 적절히 분노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칼럼 마감을 앞두고 쓸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감사일기 덕분에 칼럼 마감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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