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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훈|건축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지방 버스에 푸드덕거리는 닭을 들고 타는 사람들이 흔했다. 서울 버스에서도 주인에게 들려 상경한 닭이 가끔 똥도 싸고 울기도 했다. 지푸라기로 엮은 달걀 한 꾸러미가 큰 선물이던 순박한 시절의 모습이다. 1980년대 초, 중동 어느 나라에선가 비행기를 탔더니 전통의상에 휜 칼을 찬 사내의 어깨 위에 머리씌우개를 한 사냥매가 태연히 앉아 있더라. 이집트 룩소르에서 카이로로 가는 기차를 탔더니 닭은 양반이고 오리에 강아지 그것도 모자라 염소에 양까지 다 있어 동물농장이 따로 없더라. 지저분한 냄새에 시끄러워도 같이 가는 내내 푸근하더라.

요즘은 소비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장삿속이 발전해 농장-공장-시장이 다 붙어 있다. 집 앞의 마트에서 모든 걸 살 수 있다. 그것도 귀찮아 택배를 이용하고 무얼 들고 다니질 않는다. 바빠서 멀리 갈 수 없다는 사정과 게을러서 못가는 핑계가 엉켜 있다. 게으름에 바쁘고, 뭔지도 모르며 할 일만 많은 것에 익숙한 일상이다.

달걀 한 판을 들고 지하철을 탄 아주머니 멀리 가시는데, 늘 보던 달걀에서 수십년 전 풍경이 떠오르더라. 장소와 상황이 바뀌면 같은 사물도 낯설게 보인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내가 낯설게 느껴지더라. 가끔은 낯선 모습과 같이 사는 것이 일상이어라.

 

출처:경향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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