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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28사단 윤모 일병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구타와 가혹행위, 집단괴롭힘은 지옥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행여나 상상을 초월하는 이 악마적 상황이 그저 가해자 몇몇의 일탈적 행동의 결과라고 여겨서는 안된다. 지난 4월 육군 조사에 따르면 병영 악습 3919건이 확인되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집계한 2011년 군 사망·자살 현황도 그런 사건이 예외적 현상이 아님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기간 군내 사망자는 감소했으나 자살은 66명에서 79명으로 늘었다. 이는 선임병에 의한 가혹행위가 줄지 않고 있으며 나아가 그런 일이 병영의 일상사가 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국방부와 육군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윤 일병 사망사건에 국한해도 국방부와 육군이 과연 이런 사건을 예방하려는 노력을 했는지, 투명한 사후 조치로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나 후임 한민구 장관은 이 사건의 내막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육군 지휘부는 가해 병사들이 은폐해서 몰랐다고 변명하고 있다. 설사 그렇다 해도 군 검찰이 지난 5월2일 기소했으니 그 시점에라도 육군 지휘부는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육군은 유족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진상을 알려주지 않았다. 7월31일 시민단체가 폭로하고 나서야 관련 사실을 밝혔다.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현실이라면 군에 대한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

국회 국방위원들이 연천 28사단 977포병대대 윤일병 폭행사망사건 의무 내무반을 찾아 현장 조사후 부대 장병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모든 가해자와 방조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해 잘못 있는 사람들은 일벌백계”하겠다고 밝혔다. 국방부도 뒤늦게 추가 조사와 함께 축소·은폐 의혹에 대해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전·현직 국방장관을 포함한 모든 관련자를 성역 없이 조사해 의혹을 규명하고 잘못이 드러나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윤 일병 사건 하나를 투명하게 밝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병영의 악습은 한국 군대의 오랜 고질병이다. 이번에 악습을 완전히 뿌리뽑을 수 있을 것처럼 단기 처방이나, 임기응변적 대응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군은 2003년 분대장 외에는 병사들끼리 명령하거나 지시·간섭을 할 수 없도록 했지만 흐지부지됐다. 오랜 관습으로 남아 있는 문제는 지속적인 개선 노력이 중요하다. 지시 한번 내리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군인권법 등 제도화할 것은 하되 관행과 문화를 바꾸는 좀 더 근본적 접근을 해야 한다. 지휘권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병사들을 짐승만도 못한 상황에 방치한 부대장은 지휘자의 자격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지휘권을 박탈해야 한다. 군 인권에 손놓고 있던 국가인권위원회도 반성해야 한다. 병영의 반인권 상황을 바꾸려면 전방위적인 감시와 병영문화 개선이라는 시간과의 싸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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