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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를 즐겨라.” 오는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조언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10가지 방법 중 하나이다. 몇 해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행복지수에서 한국이 34개 회원국 중 26위로 나타났다며 우리 국민은 대체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보도한 기사가 있었다. 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지표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 14위 수준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의 행복지수가 이처럼 하위권인 이유는 무엇일까? 주된 이유로 우선 경제적 어려움을 꼽을 수 있겠지만 일상에서 행복, 좀 더 구체적으로 즐거움이나 안정감을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회문화적 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빠르게 부상하는 여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이에 대한 답이며, 창조경제를 중심으로 문화산업과 관광을 둘러싼 정부의 정책담론 역시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최근 우리 사회의 아웃도어 열풍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다. 가깝게는 주5일제 근무의 정착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 불기 시작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보여준다. 나아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소비문화란 맥락에서 설명될 수도 있는 현상이다. 특히 등산을 즐기는 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이러한 변화를 압축적으로 설명해준다. 이제 고어텍스로 대변되는 고기능성 소재의 등산복에 방수 처리된 등산화, 명품 배낭과 모자, 스틱과 고글 등 오지 탐험에나 필요하거나 전문 산악인을 방불케 하는 차림을 한 등산객들을 대도시 근교의 산 어디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크고 작은 산이 편재한 한국의 지리적 특성에 최근 지자체마다 경쟁하듯 만드는 둘레길 등이 한몫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우리 사회 여가의 콘텐츠가 그만큼 빈곤하다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산을 찾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는 점은 단순히 여가와 취미, 또는 건강관리의 차원을 넘어 오늘날 조기 퇴직이나 실업, 비정규직의 문제 등 전 지구적 경제위기하 우리 사회의 쓸쓸한 단면을 보여준다. 또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한국인들이 일상의 긴장과 불안, 피로와 허기 등 무언가를 배출하고 해소할 공간과 활동이 절실함을 보여준다.

한 백화점 내 아웃도어 매장 (출처 : 경향DB)


등산에서 불기 시작한 아웃도어 산업은 최근 캠핑과 피트니스, 골프와 자전거,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진 해외여행의 증가와 명품 소비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글램핑이란 신조어와 여행사를 매개하지 않는 젊은 세대의 해외여행이 이러한 추세를 보여준다. 물론 이는 여가와 취향의 다원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수성의 복원이란 차원에서 새롭고 긍정적 전망을 제시하는 일면도 있다. 동시에 이러한 현상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심화와 더불어 점증하는 개인화나 ‘차이의 정치’ 또는 ‘취향의 문화정치’와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등산인구의 증가와 이에 따른 아웃도어 산업의 급성장을 국가경제의 외형적 성장에 걸맞지 않은 삶의 질 하락과 부족한 문화 인프라, 심화된 경쟁 시스템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양자 간의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에 대한 정교한 분석은 한국 사회의 아파트로 대변되는 부동산 경기 변화, 급증하는 비정규직과 청년세대의 구직 문제, 세대 담론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불안정한 고용을 입증하는 조기 퇴직자나 문화생활에 많은 투자를 하기 어려운 대도시 중산층에게 가까운 산행만큼 저렴한 비용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놀이는 많지 않다. 이런 점에서 아웃도어 산업의 팽창을 비난하기만은 어렵다. 다만 우리의 여가와 취향에 대한 선호 역시 사회경제적 문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


류웅재 | 한양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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