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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이 청와대의 낙점으로 대한적십자사(한적) 총재로 선출됐을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우선 지난 대통령 선거당시 박근혜 후보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적십자사 업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기업인을 인도적 구호기관의 최고책임자로 앉히는 것은 전형적인 ‘낙하산·보은 인사’일 뿐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또한 야당과 야당 대선후보들을 향해 ‘공산당’ ‘늑대’ 등의 막말을 퍼부었으며, 최근 5년간 적십자회비 한 푼 내지 않은 것 등도 부적격 요인임을 거듭 강조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총재가 “남북 분단과 북한의 빈곤은 하나님의 뜻”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 총재는 2000년대 초반 인천의 한 교회 강연 도중 이렇게 말하면서 “현재 우리의 효율을 2~3배 올려야 그 사람들(북한 주민)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그는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해 “일본이 나쁜 게 아니라 우리가 문제”라고 말하는가 하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일본 대사관 앞 시위는 대한민국에 부정적 이미지를 준다”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식민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 운운하는 망언으로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아 퇴출됐던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와 어쩌면 이렇게 역사인식의 수준이 똑같은지 놀랍기만 하다.

김성주 회장의 인삿말 (출처 : 경향DB)


김 총재가 문씨보다 ‘진일보’한 것이 있다면 중국과 인도에 대한 발언이다. 그는 “하나님을 모르고 돈만 아는 중국이 우리 옆에서 부흥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 “인도가 너무 불결하고 무질서한 것은 잡신들을 섬겨서 그렇다”라고 했다. 국제적으로도 공인받는 구호기관의 책임자가 이 같은 편견과 적대감을 바탕으로 자신들을 매도했다는 것을 중국과 인도가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지금 남북관계는 이산가족 상봉과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이 모조리 꽉 막혀 있는 등 경색일변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적은 돌파구를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작 그 일을 선도해야 할 수장의 인식 수준이 “북한주민 2200만명이 죽어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 정도라면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김 총재는 인도, 공평, 중립, 보편이라는 적십자의 원칙을 더 이상 모욕하지 말고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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