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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특별 경계령이 내려진 지난 6월 신현돈 1군 사령관은 작전 지역을 벗어나 술을 먹고 만취했다. 그는 군화가 벗겨진 채 수행원에게 업혀 다닐 정도로 인사불성이었다. 그 사건이 알려진 며칠 뒤에는 동부전선 일반전초(GOP) 소속 임 병장이 총기를 난사했다. 그로부터 보름 뒤 한 초등학교에서 육군 소령은 북한 실체를 강의한다며 강제 낙태, 영아 살해, 잔인한 고문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림을 여과 없이 보여준 이 장면에 놀란 어린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고 울었으며 그 때문에 다음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강연의 제목은 ‘나라사랑 교육’이었다. 다시 보름쯤 지나 상습 폭행과 괴롭힘으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이 밝혀졌다. 그리고 두 달 보름 뒤에 검찰은 해군구조함인 통영함의 비리 혐의로 방위사업청 사업팀장이었던 전 장교를 구속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어제는 사단장이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이 여군은 그 전에도 다른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바 있다. 지휘관이라면 이런 부하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는 대신 5차례나 성추행을 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여군에게 지휘관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짓을 한 것이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부랴부랴 전군 지휘관 회의를 개최하며 군기를 강조했지만,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지 않는다. 최근 몇 달 사이 발생한 다양한 사건을 보면 우연의 연속이라고 보기 어려운 반복적인 패턴, 고질적 성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첫째, 장교들에게 명예심이 없다. 빛나는 계급장에 어울리는 자부심도 책임감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적나라한 물욕, 치사한 권력이다. 둘째, 병영의 폭력성이다. 지휘권 우선, 왜곡된 군사 규율을 고집하느라 인권 부재의 폭력적 군사문화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셋째, ‘나라사랑 교육’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유신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혐오와 증오가 아니라 군이 지키려는 가치다. 하지만 그런 게 없으니 엽기적 수준의 교육밖에 할 줄 모르는 것이다.

10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국회 법재사법위원회 소속 국정감사가 열려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이 육군 사단장 성추행 사건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최근 일련의 사건은 군의 예외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군대의 특질이자, 군사문화가 낳은 것들이다. 이는 군이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성역으로 대접받은 결과이다. 이런 사건의 연속극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면 이제라도 군에 의한 군 통제가 아닌, 민에 의한 군 통제, 즉 문민통제를 해야 한다. 그게 민주화된 군대의 원칙이다. 군의 민주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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