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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관련해 의혹을 제기했던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재판에 회부됐다고 한다. 가토 전 지국장은 지난 8월 조선일보 칼럼과 증권가 정보지 등을 바탕으로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미확인 행적이 전 보좌관 정윤회씨 등과 관련돼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썼다가 보수단체로부터 고발당했다. 검찰은 기사 내용이 허위사실이고, 아무런 근거나 사실확인 과정 없이 여성 대통령에게 부적절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했다. 표현의 자유를 옥죄고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조치로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산케이신문 기사가 부실하고 무책임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형사처벌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은 ‘공인 중의 공인’이다. 국가적 재난사태가 발생한 당일, 공무시간 중에, 최고의 공적 인물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일을 했는지 따져 묻는 일은 언론의 책무다. 이 과정에서 혹여 허위사실을 보도했다 하더라도 ‘진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거나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이면 위법성은 조각(사라짐)된다. 헌법재판소는 “공직자의 공무집행과 직접 관련 없는 개인적 사생활이라도, 일정한 경우 공적 관심사안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한국 검찰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4년 9월 26일 (출처 : 경향DB)


가토 전 지국장 기소는 개별적·돌출적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의 무차별적·전방위적 여론통제라는 맥락 속에서 발생한 ‘예고된 참사’로 봐야 한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말한 직후 검찰은 사실상의 ‘사이버 검열’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후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에 대한 카카오톡 사찰 사례가 불거지자 시민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카카오톡에서 독일 텔레그램으로 옮기는 ‘사이버 망명’이 봇물을 이루는 터다. 경찰은 이 와중에 명예훼손 고소사건 조사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조능희 MBC PD를 체포, 구금하기도 했다. 모바일 메신저는 검열하고, 현직 PD는 체포하고, 외신기자는 기소하는 게 2014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 비판은 언론 본연의 사명이요 민주주의 존립의 전제이다. 해외 언론을 포함하여 누구든 최고 권력자를 자유로이 비판하는 일이 가능할 때 우리는 그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 부른다. 지금 모독당하고 있는 대상은 대통령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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