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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등 유통업계 종사 노동자들에게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고 서 있는 자세로 대기하도록 하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나왔다. 인권위는 유통업 종사자 건강권 증진·노동환경 개선 등을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 장관에 권고했다고 8일 밝혔다. 몇 차례 현장 조사를 통해 드러난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 노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강제하는 움직임이다. 

백화점·면세점 노동자들이 4월22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업장 내 화장실을 사용하게 해달라는 요청에 묵묵부답인 백화점·면세점 업주들를 규탄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인권위는 산업부 장관에게는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적용대상·범위 확대 검토, 휴게시설 등 작업환경에 관한 사항을 실태조사에 포함하고 ‘유통산업발전 기본계획’ 수립 시 반영할 것을 권고했다. 노동부 장관에게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근로자 휴게시설 설치 및 세부기준 이행 현황 점검’ 조항을 신설하고, ‘서서 대기자세 유지’ ‘고객용 화장실 이용 금지’ 등의 관행을 점검·개선할 것과 미이행 시 과태료 등에 관한 사항을 법제화할 것 등을 권고했다. 지난해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연구팀의 화장품 판매 노동자 건강실태 조사에선 백화점·면세점의 화장품 판매 노동자가 하지정맥류나 방광염 등 각종 신체 질환이나 우울증을 겪는 비율이 일반인에 비해 2배에서 최대 6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에는 백화점과 면세점 내 고객용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관행이 노동자 건강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진정이 인권위에 접수되기도 했다. 

사실 현재도 큰 틀에서 관련 법규는 갖춰져 있다. 2011년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으로 마트 내 노동자를 위한 의자 비치를 의무화했고, 2018년 노동부는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와 ‘서서 일하는 근로자 건강가이드’ 등을 마련해 유통업체에 권고했다. 다만 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이번 인권위의 권고는 관련 부처에 세부기준 마련과 이행 현황 점검 조항 신설, 과태료 신설 검토 등 내용이 구체적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를 표방한다. 해당 부처는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이번 권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업과 고객도 ‘고객이 왕’이기에 앞서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녀’인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화장실 가게 해 달라는 요구를 외면하고,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물도 마시지 못하는 후진적인 노동환경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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