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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되고 네팔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되었습니다. 통장에 남은 320만원은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세요.” 2년 전 이맘때 한국의 부품 제조 공장에서 하루 2교대로 1년7개월을 일하며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던 27세 네팔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이주노동자 단체가 그가 남긴 유서를 한국말로 번역해 공개하면서 죽음이 알려졌다. 게시글 제목은 “고용허가제 때문에 한 사람이 죽었다”였다.

2004년 8월17일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는 소위 3D 국내 사업장에 합법적으로 외국인 노동력을 고용할 수 있게 허가해 준 제도다. 중소제조업과 건설업, 일부 서비스업, 어업, 농축산업 등 5개 업종에 한해 양해각서를 맺은 16개국에서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외국인력을 ‘초청’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이들은 대부분 고학력자들(대졸 이상 74.5%)로, ‘코리안드림’을 안고 왔지만, 현실은 열악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사업장을 옮길 자유가 없다. 폐업이나 반복적인 임금체불 등의 경우에만 아주 예외적으로 이동이 허용되지만, 이때도 사업주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최대 이동 횟수도 3회뿐이다. 불안한 상황을 악용한 사업주의 부당한 처우에도 참고, 불법이 발생해도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한다.

각종 사고의 끝자락에서 ‘위험의 외주화’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과 마주한다. 가축 분뇨에 질식해 숨지거나, 저류소 물에 휩쓸리고 공사장에서 추락해 사망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이들의 산업재해 건수는 내국인의 6배에 달한다. 참다못해 사업장을 무단이탈하면 불법 체류자가 된다. 10년 가까이 국내에 체류할 수 있지만 가족들과 살 수 있는 기본권도 누리지 못한다. 고용허가제가 ‘현대판 노예제’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18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는 ‘고용허가제 시행 15년’을 맞아 이주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요구는 매년 한결같다. ‘사업장 이동권 달라. 고용허가제 폐지하라.’ 이들의 당연한 요구에, 우리가 필요해서 부른 이들의 착취 수준의 노동권 침해에 더는 귀 막고 눈감지 말아야 한다. 현실적인 고용허가제 개선책이 필요하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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