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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그가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이 법관 윤리강령과 내부 지침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김 부장판사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무죄 판결이 나온 뒤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됐다. 대법원은 조만간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법원의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감안하면 그에 대한 징계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긴 하지만 부작용이 더 걱정이다.

김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 사유는 윤리강령 위반에 따른 품위 손상과 위신 저하라고 한다. 법관 윤리강령을 보면 학술·교육 목적이 아니면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평하거나 의견 표명을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이 조항은 재판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제3자가 판결 결과를 놓고 왈가왈부할 경우 예상되는 혼란과 재판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또 김 부장판사의 글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나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는지도 징계 사유에 포함돼 있다. 그는 “재판장이 승진을 목전에 두고 입신영달을 위해 사심을 담아 쓴 판결”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대법원 판결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출처 : 경향DB)


대법원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번 사건의 본질을 냉정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김 부장판사가 지적한 것은 재판 결과의 부당성이다. 법원이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에 무죄를 선고한 것은 법 상식에 비춰봐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과다. “정치관여는 했지만 선거개입은 안했다”는 결론을 ‘궤변’이 아니라면 뭐라고 할 것인가. 이를 무시한 채 징계부터 추진한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격이다. 그는 앞서 대법원의 횡성한우 판결을 비난했다 징계를 받은 전례가 있다. 국민들 눈에는 이참에 사사건건 쓴소리를 하는 ‘소신 법관’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비칠 수밖에 없다.

법원에는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법과 양심에 따른 법관의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법원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나만 옳다’는 식의 아집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만 가중시킬 뿐이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언제까지 법관 윤리라는 이름으로 틀어막고 있을 건지도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법원 내부의 건전한 토론문화마저 품위와 위신을 이유로 원천 봉쇄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김 부장판사의 징계에 앞서 사법부가 국민 눈높이를 어떻게 맞출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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