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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손님이 와서 병원 옆 건물 2층에 있는 뷔페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 식당은 음식 가격도 적당하고 맛도 좋아, 병원 직원이나 방문객들로 항상 붐빈다. 병원과는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접근하기도 편하다. 식당이 있는 그 건물이 요즘 한국에서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병원에 딸린 호텔, 일명 메디텔이다.
엠디 앤더슨 병원이 이 호텔을 소유하고 있지만, 운영은 유명 호텔체인이 맡아 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이 메디텔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뜨겁다고 말하면, 다들 의아해한다. 멀리서 진료받으러 온 환자의 편의를 위한 것인데, 그것이 왜 문제냐는 반응이다.
어찌 보면,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 병원(Hospital)과 호텔(Hotel)이 같은 어원을 가지는 데서도 알 수 있듯 환자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는 호텔 서비스는 병원이 갖추어야 할 여러 기능 중 하나이다. 병원과 호텔 연계가 기능적 측면에서 어색하지 않은 이유이다. 북유럽 국가들과 영국 등의 국영병원에서도 이미 1980년대부터 병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메디텔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것처럼, 외국에서는 멀쩡하던 것이 한국에 들어오기만 하면 희한하게 변질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메디텔도 그 전철을 밟는 것 같다. 정부는 지금껏 메디텔이 없어서 해외 환자 유치가 어려웠던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미국을 찾는 해외 환자를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하는 미국의 10대 암 병원들 중에서 호텔을 직접 운영하는 곳은 엠디 앤더슨 병원을 포함해 두 곳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소규모 숙박시설을 실비로 제공하거나 지역 호텔을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런데도 매년 세계 각지에서 수십만명의 환자들이 이들 병원을 찾는다. 중요한 것은 메디텔이 아니라 병원과 의사가 병을 고치는 실력과 이에 대한 환자의 신뢰이다.
엠디 앤더슨 병원의 호텔은 그야말로 환자 편의를 위한 부차적 서비스이다. 이것으로 인해 환자 진료가 영향을 받거나 왜곡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미국이 아무리 영리의료의 원조라고 하지만, 이런 최소한의 금기는 지킨다. 그러나 한국의 메디텔은 애초의 출발 자체가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수단이다. 수익 논리에 휘둘리면서 돈벌이 의료가 횡행하고, 그 파장이 메디텔 밖의 내국인 진료에까지 미칠 공산이 크다.
그간 정부가 내세운 해외 환자 유치라는 명분조차도 눈가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메디텔을 사실상 국내 환자용 숙박시설로 운영할 수 있도록 각종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메디텔은 지방 환자의 수도권 대형병원 집중을 심화시키는 통로 역할을 하게 된다. 메디텔로 해외 환자를 잡는다더니만, 실은 그것이 아니라 서울 병원이 지방 병원을 잡고, 대형병원이 중소병원을 잡게 생겼다.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란? (출처 : 경향DB)
정부와 메디텔 찬성론자들은 우리도 동남아의 몇몇 병원들처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스파, 피부관리, 마사지, 미용성형 시술 등으로 돈을 벌자고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메디텔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서비스를 폄하할 이유도 없고, 이것으로 돈 버는 것을 말릴 일도 없다. 그러나 세계 10위권에 육박하는 경제대국의 정부가 나서,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두 팔 걷고 나서 야단법석을 피울 사안은 아니다. 더구나 이것이 한국의 성장동력이고, 이 정부의 창조경제라니, 한마디로 창피스럽다.
최근 정부는 메디텔 외에도 병원의 영리 자회사 설립, 온갖 영리적 부대사업 허용 등 수많은 의료영리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병원에 난장을 차릴 기세다. 의사와 병원에 더 이상 진료 수입에만 안주하지 말고, 재주껏 돈을 벌어보라고 한껏 부추긴다. 장차 이것이 만들어낼 미래의 의료는 어떤 모습일까? 사업 수완이 좋은 의사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우직하게 환자 진료에 전념하는 의사는 뒤처져 도태되는 의료. 이것은 의사에게는 불행이고 환자와 국민에게는 재앙이다.
이진석 | 서울의대 교수·미 텍사스 보건대학원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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