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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은 이제 딱히 새롭지 않다. 당사자들은 부인하지만 의혹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가 기소되지도 않은 사건을 두고 법률 검토를 했다는 보도는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온다. ‘양승태 행정처’가 사실상 박근혜 정권의 ‘법무참모’ 노릇을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지난달 3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 196개(중복파일 제외)를 추가로 공개했다. 이 문건은 국회·언론을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를 시도한 정황을 보여준다. 사진은 문건과 양 전 대법원장. (출처:경향신문DB)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2015년 3월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습격당한 후 행정처는 ‘외로운 늑대에 의한 테러방지법안’ 문건을 작성했다. 이 문건은 피습 사건을 ‘외로운 늑대의 백주테러’로 규정하고 “현재가 테러방지법 입법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또 입법 시 “영장주의 예외, 증거능력 부여 완화, 불시 검문 가능”을 포함해야 하며 “입법 전에라도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을 적극 해석·집행해야 한다”고 적었다. 리퍼트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가 재판에 회부된 것은 4월1일이다. 행정처는 2015년 6월 ‘박근혜 가면 민형사 책임 검토’라는 문건도 만들었다. 온라인에서 ‘박근혜 가면’이 판매되고 있어 법적 책임을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는 관련 사건이 검경에 접수되지도 않은 시점이다. 두 문건 모두 법원과 무관한 사안에 대해 사전 법리 검토를 한 것이다.

양승태 행정처가 정부 부처의 소송서류를 사전에 받아본 정황도 드러났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컴퓨터에서 ‘(141007)재항고 이유서(전교조-Final)’ 문건이 발견됐다고 한다. 서울고법이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결정을 하자 고용노동부가 반발해 재항고하며 낸 이유서다. 제목으로 미뤄볼 때 문건 작성일은 2014년 10월7일로 추정된다. 재항고 이유서가 재판부에 제출된 것은 다음날인 10월8일이다. 검찰은 행정처가 서류를 미리 보고 노동부에 법적 조언을 해줬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행정처가 개별 법관의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만으로도 시민의 충격과 분노가 크다. 하물며 법원에 오지도 않은, 아니 수사기관에 접수되지도 않은 사건에 행정처가 개입했다면 상상을 넘어서는 사태다. 삼권분립 위반을 따지기조차 사치스럽다. 사법부가 행정부의 소송을 도왔다는 의혹 또한 마찬가지다. 행정처가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을 했는지, 청와대 지시에 의한 것인지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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