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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방과후 영어수업을 금지하기로 한 방침을 유예하기로 했다. 학부모들의 거센 반대와 영어 사교육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교육부는 충분한 여론수렴을 거치지 않은 채 설익은 정책추진으로 혼란을 초래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유치원·어린이집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밝힌 지 3주 사이에 ‘미확정→금지 통보→유예’로 입장을 바꿔 교육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했다. 교육부는 16일 “국민들의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여 내년 초까지 유치원 방과후 과정 운영기준을 마련하겠다”며 최종 결정을 1년 뒤로 미뤘다.

학원 영어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는 아이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번 논란은 교육부가 지난달 27일 ‘유아교육 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교육부는 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올해 3월부터 초등학교 1~2학년의 방과후 영어수업이 금지되는 만큼 유치원의 영어수업도 막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반발이 커지자 “확정된 방안은 없다”고 했다. 그러다 지난달 30일에는 어린이집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새 학기부터 영어수업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했다. 학부모들은 “월 100만원 안팎인 영어유치원은 규제하지 않고, 월 3만원가량인 유치원 영어수업을 금지하면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에 반대한다는 글이 9000여건 올라왔고, 여당도 부정적인 의견을 교육부에 전달했다.

지난해 8월 김상곤 장관 취임 이후 교육부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을 추진하다 여러 차례 제동이 걸렸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 폐지 등 굵직한 교육개혁 방안은 학교 현장과 학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시행이 유보되거나 반쪽짜리가 됐다. 유아교육·보육 통합(유보 통합)과 같은 민감한 현안은 아예 국가교육회의로 공을 넘겼다.

지난해 하반기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 중 교육분야 지지율은 35%로 가장 낮았다. 교육개혁 전도사를 자임한 김상곤 장관이 뼈아프게 느껴야 할 대목이다. 교육정책은 학교와 학부모,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투명하고 치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도 현실을 외면하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섣부른 정책 추진과 원칙 없는 갈지자 행보가 거듭되면 교육개혁은 물 건너간다는 사실을 교육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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