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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법원행정처가 판사회의 의장 선출에 개입하려 했다는 정황이 나왔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 중인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이러한 내용이 담긴 문서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정당은 물론 민간단체 선거에서도 외부의 개입은 용납되지 않는 부정행위에 속한다. 하물며 사법부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추가조사위는 의혹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규명해야 할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치고 차량에 오르기 전 직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추가조사위는 행정처 컴퓨터에서 2016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출 관련 대책을 담은 문건을 찾아냈다고 한다. 문건에는 당시 유력 후보이던 특정 판사의 성향과 활동을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른바 ‘대항마’를 내세운다는 부분이다. 해당 판사는 2015년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검사로서 국가안전기획부·경찰의 은폐·축소 기도를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취지의 글을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인물이다. 당시 양 대법원장은 자신이 임명 제청한 박 후보자가 법원 안팎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비판의 표적이 됐다. 결국 대법원장의 수족과 같은 행정처가 나서 ‘눈엣가시’ 판사의 의장 선출을 저지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의장으로 해당 판사가 선출되긴 했으나, 경선 과정에 ‘의외의 인물’이 나섰던 것도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문제의 행정처 문건 중 일부를 작성한 전 행정처 심의관(판사)은 “행정처 고위관계자의 지시로 문서를 만든 것”이라고 추가조사위에 진술했다고 한다. 이 판사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이런 엄청난 문건을 실무자 단독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자율적 기구의 선거에 행정처가 개입하려 했다면, 이는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추가조사위는 양 전 대법원장이 문건 작성 사실이나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 ‘대항마’ 계획이 실행됐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법원 내부게시판에서 일부 판사들이 ‘행정처 컴퓨터 강제 조사’ 등에 반발하는 데 휘말려서도 곤란하다. 법관의 독립은 주권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법원 기득권세력을 위한 것이 아니다. 추가조사위는 이를 명심하고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모를 낱낱이 파헤쳐 시민 앞에 드러내야 한다. 양 전 대법원장도 조사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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