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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 의혹의 중심에 있던 이완구 국무총리가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중남미를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사의를 수용하고 27일 귀국하는 대로 처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총리의 거취를 둘러싼 정국의 혼란은 일단 정리될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국정의 표류는 피할 수 없게 됐다. 당장에 대통령의 국내 부재중에 대통령 역할을 대행하는 이 총리가 물러나면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총리 대행으로 어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모두가 총리의 사퇴 문제를 매듭짓지 않은 채 출국한 대통령의 안일한 대응이 자초한 결과다. 공무원연금 개혁 등 각종 개혁을 추진해야 할 상황에서 장기간 ‘총리 공백’ 사태로 국정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 총리의 사퇴는 사필귀정이다. 이 총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의혹으로 ‘수사 대상 1호’가 된 순간부터 정상적으로 총리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거듭된 말 바꾸기와 거짓말로 일관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검찰 수사 결과 지난 1년 동안 이 총리와 성 전 회장 사이에 휴대전화 착·발신이 217차례나 있었던 사실이 밝혀지고, 이 총리가 증거인멸 시도까지 벌인 게 드러나자 여당조차 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이 총리의 사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현직 총리를 수사하는 걸림돌이 제거된 만큼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성역을 두지 않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이완구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가운데 이 총리를 대행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2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한다. (출처 : 경향DB)


박근혜 정부 들어 3명의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한 데 이어 이 총리도 ‘역대 최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남기고 사퇴했다. “총리 하나 제대로 내세우지 못하는 정부”라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응당 인사권자인 박 대통령에게 최종 책임이 있다. 한데 박 대통령은 이 총리의 사의 표명 보고를 받은 뒤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고 했다. 여전히 남 일 얘기하듯 안타까움이나 피력하는 태도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총리의 사의에 ‘고뇌’ 운운하는 박 대통령에게서 일말의 책임감이나 반성도 찾아볼 수 없다. 전·현직 비서실장을 비롯해 자신의 주변 인물들이 대거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나라를 소용돌이치게 한 것만으로도 먼저 국민에게 송구스러워하며 고개를 숙여야 마땅하다. 비리 의혹으로 총리가 재임 2개월여 만에 사퇴하고, 이로 인한 국정 난맥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허탈과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통령이 먼저 살펴야 할 것은 피의자 신분이 된 총리의 심기가 아니라 이 난국을 걱정하는 국민들의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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