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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10만달러 수수 의혹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김 전 실장은 “2006년 9월 김 전 실장이 VIP(박근혜 대통령) 모시고 벨기에·독일 갈 때 10만달러 바꿔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경향신문 인터뷰 내용을 부인해왔다. 그는 “항공료와 체재비를 초청자가 부담했다. 개인 돈을 많이 써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초청자 측에서 ‘한국~유럽 구간 항공료는 지원한 바 없다’고 밝히면서 거짓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2006년 당시 박 대통령 일행을 초청했던 독일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은 이 신문사의 질의에 “박 대통령 일행이 베를린과 브뤼셀에 머무는 동안 숙식 및 교통 비용을 제공했다. (한국과) 유럽을 오가는 국제항공편에 대해서는 지불하지 않았다”는 답신을 보내왔다고 한다. 재단 측은 유럽 내에서 소요된 비용만 지급했다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의 해명과 명백히 배치되는 대목이다. 아데나워 재단의 말대로라면 ‘제3의 인물’이 항공료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해진다.

앞서 김 전 실장은 성 전 회장과의 접촉에 대해서도 말을 바꾼 바 있다. “(2013년 8월5일) 비서실장이 된 다음에는 성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가 접촉 사실에 대한 보도가 나오자 2013년 11월6일 만찬을 한 사실을 인정했다. 성 전 회장과의 전화 통화 여부를 두고도 “최근에 통화한 적이 없다”고 밝혔으나, 검찰의 통화내역 분석 결과 최근 1년 사이 성 전 회장이 김 전 실장과 40여차례 통화를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다. 계속되는 거짓말은 성 전 회장이 제기한 10만달러 수수 의혹에 신빙성을 보태주고 있다.

일본으로 출국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0일 김포공항으로 입국해 승용차를 타고 있다. (출처 : 경향DB)


김 전 실장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져가는데도 진실을 고백하기는커녕 오만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 19일 갑자기 일본으로 출국해 ‘도피성 출국’ 논란을 빚었다. 이튿날 오후 귀국하기는 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이다. 거액의 불법 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사가 특별한 이유 없이 해외로 나간다면 어떠한 반응을 야기할지 모르는가. 출국금지 대상자가 아니라는 점을 만방에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인가. 김 전 실장은 이제라도 모든 사실을 가감 없이 털어놓고 검찰 수사를 자청하는 게 옳다. 검찰 또한 ‘성완종 측근’ 잡는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성완종 리스트’의 본질에 접근하기 바란다. 김 전 실장의 혐의가 갈수록 짙어지는데도 오불관언하는 검찰이 보기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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