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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군 전산망 해킹사건 이후 군 당국이 수사를 진행한 결과, 1급 군사기밀인 ‘작전계획 5027’도 함께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는 그젯밤 작계 5027이 해킹당했다는 KBS 보도가 나간 후 입장자료를 내고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광범위하게 수사 중이며, 수사가 끝나는 대로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작계는 북한의 선제공격에 대비한 한·미 연합군의 전시 군사작전 계획이다. 여기에는 국면별, 상황별 한·미 양국의 군사 대응뿐 아니라 양국군 부대의 배치와 진격 경로 등 극비 정보가 들어있다. 일부만 적에 유출돼도 군 작전의 근간을 바꿔야 하는 군사 기밀자료가 실제로 유출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창군 이래 초유의 정보 유출을 대하는 국방부의 대응이 영 이상하다. 국방부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들어 추가 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한·미 양국군의 전쟁 계획을 폐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정보유출을 확인하고, 수사가 막바지라면서도 유출된 자료가 무엇인지는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기밀 유출을 시인하면 북한이 작계 등 기밀자료를 확보했을 경우 그 내용이 진짜 기밀이라는 점을 확인해주는 셈이 된다는 이유도 댔다. 기밀이 유출된 것도 황당한데 북한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진실을 밝히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신뢰를 잃은 국방부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당혹스럽다.

KBS1 화면캡쳐

군 당국은 지난해 9월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킹 시도를 처음 발견해놓고도 한 달 반 동안 기밀 유출 사실을 인지하지조차 못했다. 군 당국은 군 전산망이 내·외부망으로 엄격히 분리돼 있기 때문에 작계 등이 들어있는 내부망은 안전하다고 해명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군의 안보 무능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이다.

국방부는 안보 현실이 엄중하다며 시민이 반대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는 서두르면서 정작 컴퓨터 안에 들어있는 1급 기밀도 지키지 못했다. 군의 무사안일과 직무태만, 비밀주의 등을 더 이상 방치·허용해서는 안된다. 사이버 안보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다. 국방부는 반년 이상 수사를 진행해놓고도 해킹의 전모를 밝히지 못했다. 이런 국방부의 능력과 의지로는 사이버 안보를 지켜낼 수 없다. 국회나 다른 국가기관이 직접 나서 진상을 밝히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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