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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전 대표가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나도 참여해서 한 표를 던졌다. 두 사람 외에는 사실상 유력 후보가 없다 하니 어쨌든 정권교체가 확실하고, 그러면 이제 ‘촛불혁명’의 2단계란 것도 달성되는 건가?

그런데 뭔가 매우 찜찜하고 부족하다. 굉장히 익숙한, 김 빠진 국산맥주를 종이컵에 부어 들이켜는 듯한, 외려 더 목마르고 답답해진 이 느낌은 도대체 뭘까? 호사가 ‘아재’들이나 종편은, 매일매일 몇 자 구도, 여론조사 산수놀이에 열을 올리고, 별 논쟁거리도 안될 논쟁을 만들어내는데 왜 이런가? ‘아름다운 경선’이었다 자찬들도 하는데, 나 자신 지난달 자동응답(ARS) 전화투표 참가 신청할 때와 마음가짐이 달라져버렸다. 이른바 ‘어대문’ 상황이라 그런가? 그렇진 않다. 1·2위 간 격차가 좁아진다 가정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가 3일 서울 고척동 스카이돔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후보자 수도권, 강원, 제주 선출대회에서 최종 후보로 선출된 뒤 손을 들어 지지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늘 봐오던 익숙한 ‘현실 정치+정치소외’의 구도 아닌가? 일부 ‘빠’들은 우상화와 비이성으로 무장하고 다른 후보와 그 지지자들을 벌떼처럼 공격하는 것을 낙이자 자랑으로 삼는 듯하다. 그러나 외려 그들이 맵차게 행동할수록, 다른 다수의 시민들은 뜨악해지고 정치에 대한 염오가 커진다. 한때 정치인 팬덤이 정치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적이 있었다. 이젠 아닌 듯하다.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회의해야 한다. 폭력과 욕설로 중무장하고 역사의 발목을 뒤에서 잡아채려 한 박사모만의 문제인가? 박근혜에게 박사모가 눈을 멀게 하는 암종이었듯, 다른 정치인들도 열광적 지지가 외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성찰해야 한다.

선거철답게(?) 멋진 공약도 넘쳐나지만 진정성이 있다고는 여기기 어렵다. 탄핵정국 이후 야당 의원들은 각기 스타가 돼 방송 출연을 하거나 선거운동하느라 바빠선지, 개혁입법을 단 하나도 통과 안 시켰다. 18세 선거권 하나 못 만들어낸 원내 1당과 다른 당들의 개혁의지를 얼마나 신뢰해야 할까? 과연 이제 젊은 세대의 대선에 대한 관심은 얼마나 될까?

여기에 이르러 찜찜함의 결정적인 이유를 만난다. 노동자, 여성, 청년들은 대선판에서 배제돼가고 있다. 익숙한 상황이다. 당원들과 지지자들끼리의 바람이 있는진 몰라도 그들과 함께하는 바람은 잘 모르겠다. 백화점식 공약 나열 앞에 대선이 ‘내 일’이라 여겨질 진정한 논쟁이나 참여는 없다. 후보들 중에도 청년·여성·노동자들이 ‘진짜 내 대통령’이라 여길 만한 신선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잘 안 보인다. 대신 욕심꾸러기 영감님들과 권력기술자들이 정치공학으로 판을 수놓는다. ‘정치소외’는 이 모든 것의 결과이리라.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경선후보가 4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19대 대선후보자 선출대회에서 후보로 공식 선출된 뒤 수락연설을 마치고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ㅣ연합뉴스

만약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젊은이들의 투표율은 다시 낮아지고 결국 환멸이 온 나라를 덮을 것 같아 불길하다. 실제로 서울대 ‘대학신문’(4월3일자)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지하는 후보를 묻자 서울대생의 30%가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고 답했다.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고 답한 학생은 ‘대세’ 후보를 지지한다는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 ‘지지하는 후보가 없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6.4%가 “딱히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서”라고 답했고, “정치에 무관심해 후보들에 대해 잘 몰라서”라는 답변(32.4%)이 뒤를 이었다 한다. 왜 이럴까? 이런 큰 무관심은 어떻게 ‘촛불’과 병립하는가? 아마 일하느라, 입사시험 준비하느라 바쁜 젊은이들 대부분이 비슷해지고 있는 거 아닐까?

전적으로 정치권의 책임이다. TV 프로그램에서도 앞다퉈 정치를 다루고, 헌법을 논하고 설명하는 책들이 수십만권 팔릴 정도로 시민의 주권의식과 참여의식은 높아졌지만, 대선은 과연 거기에 부응하는 방향인가?

촛불과 정권교체는 양가적 관계를 맺는 듯하다. 일면 이번 대선에서 야당이 집권하는 것은 일종의 연착륙일 수 있겠다. 즉 ‘이명박근혜’ 시대의 종결과 새 민주정부의 시발은 ‘촛불 여망’의 공약수이자 최소치다. 반면 ‘그들만의 리그’식으로 진행되는 대선은 촛불의 한계다. 대선이 오히려 촛불을 배신하고 그 변혁성을 진압하는 수동혁명이 될 거라는 불길한 예언은 이미 나오기도 했었다. 자다 봉창 두드리는 듯한 대연정이니 개헌이니 하는 소리들과 박근혜를 구속하자마자 ‘사면’ 논란부터 나온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이러려고 주말마다 촛불을 들었나? 민주주의를 회복시킨 아래로부터의 정치에너지가 급격히 소진되는 느낌이다. 퇴진행동이 촛불을 여의도 국회로 가져가지 않은 것(못한 것)이야말로 최대의 아쉬움이다. 적어도 이런 견지에서는 ‘대세’란 허망하다. ‘대세’가 그러니 뭔가 억지스러운 ‘이자구도’도 자동 기각이다. 촛불의 연장으로서의 대선, 개혁과제를 진짜 수행하기 위한 대선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정권교체를 원하지 않는다. 촛불은 ‘다른 사회’를 원한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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