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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시대정신이다. 통일부의 역할은 대북정책 수립과 대북협상, 대북교류협력의 총괄·조정을 통하여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은 잃어버린 9년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원회 시기 통일부 폐지론을 들고 나왔다. 통일부를 외교부에 흡수시켜 남북관계를 대외관계의 틀 속에서 풀려는 구상을 가졌다. 한반도문제를 국제화시켜 남북문제를 국제사회에 의존해서 풀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남북관계는 국가 대 국가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다.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를 통해 당사자인 남북한이 먼저 협의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지지와 협력을 받는 것이 기본원칙이다. 시대정신을 소홀히 하는 이명박 정부의 인식이 출범에서부터 잉태되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였다. 신뢰와 균형이 핵심기조이다. 출범 전후 북한의 압박은 거칠었다. 핵실험, 정전협정 백지화, 개성공단 잠정 중단 등 대남압박은 지속됐다. 집권 3년차까지 37회의 회담과 2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2016년 북한 핵실험 후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한·미군사훈련은 더욱 강해졌다. 평양 참수작전 훈련이 공개됐다. 남북 간의 신뢰형성은커녕 대립·갈등만 증폭됐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어떻게 신뢰를 쌓을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이 없었기 때문에 출범에서부터 대립·갈등이 잉태되고 있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가운데)이 ‘조선인민군 땅크병(탱크병) 경기대회-2017’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의 통일부는 세 가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첫째, 역할 부재이다. 남북관계 주무부처로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청와대 안보실과 국가정보원의 대변인 역할만 했다. 김정남 테러 사건에 대한 통일부의 긴급 브리핑은 통일부를 포기하고 조사부로 전락한 느낌이다. 둘째, 대화 부재이다. 대화다운 대화는 없고 대북압박·제재만 난무했다. 전쟁 중에도 대화를 하는 평범한 역사적 경험을 간과했다. 압박과 제재는 게으른 공무원의 탁상행정에서나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공무원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해법을 찾는다. 셋째, 전략 부재이다. 전략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지침이다. 행동지침은 스스로 일탈하지 않으면서 북한이 우리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도록 하는 것이다. 통일부는 대북전략이 없고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았다. 전략 부재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모호성에도 요인이 있다. 정치인의 새 정치, 김정은의 생각,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알 수 없는 4가지’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대북정책 실패사례는 개성공단 폐쇄, 핵·미사일 대처, 대북심리전 재개 등이 있다. 개성공단 폐쇄는 졸속으로 이루어진 잘못된 결정이었다. 마지막 대북 레버리지가 상실됐다. 대북압박 효과보다 우리 기업의 피해가 더 컸다. 북핵·미사일 대처는 모든 문제와 연계함으로써 경색국면 출구를 스스로 차단했다. 북한의 핵·미사일은 체제생존 수단으로써 대미용이 강하다. 제한적인 우리의 정책 수단을 스스로 제약한 것은 전략이 아니다. 대북심리전 재개는 대북효과 맹신에서 출발한다. 실재적인 효과에 대한 검증은 어렵다. 군사적 긴장만 높였을 뿐이다. 북한의 맞대응 대남방송으로 접경지역의 우리 주민에게 피해로 돌아왔다.

한국 정치사에서 ‘1987년 체제’ 이후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는 김대중 정부와 이명박 정부이다. 두 정부 모두 경제 살리기가 주요 관심사였다. 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투자유치가 시급했다. 해외투자유치를 위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의 안정이 필요했다. 해외투자유치·남북관계 개선·한반도 안정의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는 북한을 배제한 자원외교를 펼쳤다. 결과는 경제침체·한반도 긴장고조·해외투자 실패로 이어졌다. 두 정부의 비교에서 경제·남북관계·한반도 안정 문제가 서로 밀접히 연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작금의 조기대선 과정에서 국민의 70% 이상이 정권교체를 희망한다. 87년 체제 이후 세 번째 정권교체가 유력시되는 시점이다. 차기정부는 적폐청산과 경제 살리기가 주요 관심사로 예상된다. 통일부의 위상과 역할은 차기 정부에 아주 중요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통일부 장관이 상임위원장을 맡은 김대중 정부 시기 최고의 호평을 받았다. 청와대에 안보(군)수석, 외교(국제협력)수석, 통일(북한 특수성)수석을 설치해서 역할 분담을 통한 균형정책이 필요하다. 역사는 전진한다. 과거·현재·미래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좋은 점은 계승하고 미흡한 점은 개선해 나가는 것이 역사발전을 이끈다.

양무진 | 북한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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