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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관련 고소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어제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 동향’ 문건 작성자로 지목된 박관천 경정을 소환 조사했다. 박 경정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검찰은 박 경정의 청와대 재직 시절 직속 상관이었던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에게도 출석을 통보했다. 조기에 수사를 마무리짓겠다는 뜻이 감지된다.

검찰의 행보는 의구심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검찰은 어제 “고소인들을 모두 소환하는 것은 의미없다”며 고소인 8인 중 말석에 가까운 김춘식 청와대 행정관을 불러 조사했다. 의혹의 초점인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의 소환 여부를 두고는 “조율 중”이라고만 했다. 의혹의 실체를 밝히려면 이들 3인은 물론 김기춘 비서실장도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 문건이 작성된 공직기강비서관실에 대해 압수수색이나 현장조사를 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고소인 조사 단계부터 청와대 눈치를 보는 기류가 역력하니, 철저한 진상규명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의 작성자 및 외부 유출자로 지목된 박모 경정이 1일 오전 자신이 근무하는 경찰서에 출근해 휴가를 낸 뒤 자택으로 돌아가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 같은 상황은 예견된 것이다. 청와대에서 사실상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그어놓은 까닭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문건 내용을 “루머”로 규정하고 그 유출을 “국기문란 행위”로 질타하며 조기 진화를 주문했다. 청와대는 자체 조사를 통해 박 경정을 문건 유출자로 지목했다고 한다. 검찰이 박 경정 주변에 대한 압수수색을 채 마치기도 전에 출석을 통보한 것도 청와대의 강경 드라이브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수사가 이렇게 흘러갈 경우 검찰은 청와대가 미리 짜놓은 얼개에 맞춰 결론을 내야 하는 처지로 몰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지난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로 성가를 올리며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는 듯했다. 그러나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으로 물러나고 김진태 총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다시 추락의 길을 걷고 있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을 수사할 때마다 정권이 정해놓은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사건의 결말도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팽배하다. 하지만 진실은 잠시 가릴 수 있어도 영원히 덮을 수 없는 법이다. 정도를 걷지 않으면 동티가 나게 마련이다. 야당은 정윤회씨와 이른바 ‘십상시’로 불리는 인사들을 공무상 비밀누설이나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할 것이라고 한다. 검찰은 이러한 부분까지 포함해 어떠한 성역도 두지 말고 수사해야 한다. 그게 검찰이 사는 길이다. 속전속결이 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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