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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정당이든 당적을 가져본 적이 없다. 변호사로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에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는 것을 내 역할로 생각하고 노력해 왔을 뿐이다. 위 목적을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또 어떤 세력이라도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을 내 길로 여겨왔다. 정당해산심판이 청구되기 직전에 이 사건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순간 고민이 없지 않았다. 통합진보당의 분열과 중앙위 폭력사태 등에서 보인 실망스러운 모습과 당원 모임에서 나타난 이해하기 힘든 토론 내용 등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말뿐이었는데도 내란음모로 몰아가는 것은 부당해 보였고, 또한 정당해산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이 동원되어야 할 상황도 아닌 것으로 보였다. 정당해산심판청구를 기각시키는 것이 법률가로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내가 할 일이라고 믿고 이 사건을 맡았다.

정당해산심판청구서에는 적어도 정당해산에 관한 법리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정리돼 있었다. 대체 가능한 수단이 있는지 여부, 해산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 침해될 법익을 비교·형량하는 법익균형성을 고려하는 ‘비례원칙’을 해산요건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후 비례원칙은 정당해산 요건이 아니라고 주장을 변경했다. 1956년에 선고된 독일공산당 해산 판결에서는 비례원칙이 고려되지 않았으나, 이후 베니스위원회 지침과 유럽 인권재판소 판례에서는 비례원칙이 핵심요건으로 됐다. 비례원칙이 정당해산 요건이 아니라는 정부 주장은 그 이후에 발전된 법리를 무시하고 1950년대 독일공산당 판결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정부는 비례원칙이 정당해산 요건이라는 주장을 유지하면 해산결정이 나오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진행과정에서 정부는 모든 사물과 현상을 북한의 대남혁명전략 관점에서 해석했다. 붉은색 안경을 끼고 보니 모든 것이 붉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부 태도에 대해 ‘북한보다 더 북한스럽다’고 비판했더니, 정부 대리인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색채를 완화하는 강령개정을 한 것은 진정한 목적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고, 소수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중투쟁의 병행을 주장하면 폭력혁명을 추종하는 것이 된다. 북한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강력한 톤으로 비판하지 않으면 곧 종북(從北)이 된다. 여러 사정을 고려해 태도 표명을 유보하면 북한을 찬양하는 것이 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이분증오’를 연상케 한다.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 단어들인 ‘자주, 민주, 통일’, ‘진보적 민주주의’, ‘일하는 사람’, ‘민중’ 등을 사용하면 북한을 추종하는 것이 된다. <1984년>에서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단어들을 폐지하고 신조어를 창조하듯이, 정부의 태도는 위 단어들을 폐지해야만 한다는 것으로 읽힌다.

정당해산심판사건 변론종결기일에 첫째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 둘째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셋째 우리 국민의 자존(自尊)을 위해서, 넷째 청구인인 대한민국 정부를 위해서, 다섯째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해서, 여섯째 헌법재판소를 위해서 정부의 정당해산심판청구를 기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헌법재판소가 해산결정을 한다면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될 것이고, 우리 사회 민주주의는 조종(弔鐘)을 울릴 것이고, 우리 국민은 민주적 역량이 전혀 없는 우민(愚民)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고, 대한민국 정부는 그 무능함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이 될 것이고,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는 희망을 상실하게 될 것이며, 시민민주화 투쟁의 산물인 헌법재판소는 그 존립의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심판 마지막 공개변론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출처 : 경향DB)


1년이 넘는 동안 진행된 이 사건에 엄청난 인력과 예산과 사회적 역량이 투입됐다. 이러한 노력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으려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야 한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결론이 난다면 그 얼마나 참담한 일이겠는가? 아홉 분의 헌법재판관들이 현명한 결론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


김선수 | 법무법인 시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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