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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2일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이마트·홈플러스를 비롯한 6개 업체가 서울시내 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심을 뒤집었다. 1심에서는 “영업시간 제한이 중소업체나 재래시장 상인의 매출 증대에 큰 효과를 미치는 공익적 규제”라고 밝힌 바 있다. 각 지자체는 대형마트의 연중무휴 영업을 규제하기 위한 유통산업발전법을 근거로 자정~오전 8시와 매주 둘째·넷째 일요일을 의무휴업하도록 해왔다.

법령을 보면 대형마트는 ‘3000㎡ 이상 면적에 점원 도움 없이 소매하는 점포’라고 돼 있다. 이번 판결은 대형마트는 소비자 편의를 위해 점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규제대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여기서 ‘점원 도움’은 대형마트를 다른 소매점과 구분짓는 편의상의 자구일 뿐이다. 실제 대형마트 고객은 직접 카트를 끌고 다니며 장을 본다. 법 취지를 보면 더 이해할 수 없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지난 대선 과정에 대형마트와 변종 기업형슈퍼마켓(SSM)의 확산으로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고사 위기에 몰리자 이를 규제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쉽게 말해 ‘대형마트 규제법’이다. 이런 법 취지를 망각한 채 자구 하나로 대형마트가 규제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궤변에 가깝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을 알리는 팻말 (출처 : 경향DB)


이번 판결의 문제점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재판부는 “전통시장 활성화도 좋지만 맞벌이부부의 불편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또 규제 근거인 대형마트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에 대해 “전통시장 상인들의 건강을 더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영업 규제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얼핏 옳은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재래시장 상인의 건강권은 당장 생존을 위협받는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한가로운 얘기다. 맞벌이부부의 불편도 휴일 하루 마트가 문을 닫는다고 장보기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유럽 각국은 우리보다 훨씬 강도 높은 규제를 갖고 있다. 판결문을 곱씹어 볼수록 결론을 내놓고 짜맞추기를 한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대형마트 영업규제의 효율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규제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 효율적인 방안은 찾지 않은 채 이참에 뭉개자는 발상엔 동의할 수 없다. 이번 판결이 법원의 보수화 논란과 맞물려 있다는 게 더 꺼림칙하다. 법치의 테두리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게 법원의 존재 이유다. 상고심의 최종 판단이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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