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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R&D) 지원사업은 정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돈이 없어 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거나 기업이 선뜻 투자하기 힘든 분야의 신기술 개발을 통해 국부 창출에 기여하는 게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요체다. 지난해 정부의 연구·개발 사업비만 16조원을 웃돈다. 하지만 연구·개발에 쓰여야 할 돈이 엉뚱한 곳으로 새는 게 문제다. 검찰은 그제 정부 출연금을 집행하는 과정에 뇌물을 받은 공공기관 직원 3명과 이들에게 돈을 건넨 기업체 간부 6명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공공기관의 비리 행태는 요지경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연구원들은 기술 개발용 정부 출연금을 떡 주무르듯 했다. 정부 연구과제를 특정 업체가 맡도록 해 주고 15억원의 뒷돈을 챙겼다. 사업비를 부풀려 지급한 뒤 되돌려받는 전형적 수법이다. 더구나 뇌물 받은 사실이 들통날까봐 친척 명의로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뒤 용역비를 받은 것처럼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원들은 이렇게 번 돈으로 외제 승용차를 굴리고 해외 골프여행을 즐겼다고 한다. 해당 업체는 이 돈을 기술 개발에 쓰지 않고 공장 증축에 전용한 사실도 들통났다.

한 기업의 생명과학연구소에서 연구원이 백신의 개발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연구·개발 지원사업을 둘러싼 비리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에는 국책 연구기관인 생산기술연구원 직원들이 중소기업에서 기술지원 업체로 선정되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았다가 구속됐다. 연구원들이 다른 사람 명의로 회사를 차린 뒤 연구·개발 자금을 조직적으로 빼돌린 사례도 있다. 지난해에는 질병관리본부 산하 연구원들이 시료 납품 업체에서 억대의 금품을 받은 사실이 적발됐다. 연구·개발비 횡령은 검찰 수사나 감사원 감사의 단골메뉴가 된 지 오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정부의 연구비 예산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연구·개발 자금 횡령이나 이를 둘러싼 뇌물 비리는 우리의 미래를 도둑질하는 중대 범죄다. 전문성을 앞세워 끼리끼리 나눠먹는 공공기관 연구원들의 그릇된 행태는 범죄집단과 다름없다. 첨단 신기술 개발과 산업 생태계가 걸린 연구·개발비가 줄줄 새고 있으니 창조경제가 제대로 이뤄질 턱이 있겠는가. 연구기관의 수뢰 및 횡령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관리·감독 부실이 주원인이다. 연구비를 늘릴 생각만 했지 제대로 쓰이는지에 대한 감시는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정부는 철저한 사후관리를 통해 국가의 미래를 좀먹는 세금 도둑질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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