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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은 죽지 않았다’는 추론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해 이미 공식적으로 배척되었다. 이로써 그가 죽긴 죽었을 것이라고 공감하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그러나 그의 사인을 둘러싼 의혹은 날이 갈수록 변화무상하게 증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병언의 최후와 직간접으로 연관되었을 것으로 여겨온 신모 여인과 양회종 등은 진술을 번복하거나 ‘모호한 알리바이’로 유병언의 사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로 일관하고 있다.

유병언은 세월호 참사 원인 수사의 핵심 인물이기 이전에 한 종교단체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경영인이었고, 많은 재산을 타인에게 맡겨둔 재력가로서 폭넓은 사회생활을 해왔다. 즉 많은 사람들과 복잡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런 인물이 여럿의 조력을 받으며 도피 중 석연찮은 장소에서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백골화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면 설령 그 직접 사인이 자살로 결론나건, 자연사로 나타나건, 아니면 타살됐건 그 과정에는 누군가 비밀스러운 기획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자살과 자연사도 누군가의 의도로 조장되고 있는 오늘날의 범죄양태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그를 매실밭에 데려다 놓고 “내가 다시 찾으러 올 때까지 꼼짝하지 말고 이 부근에 계세요”라고 한 후 다시 데리러 가지 않으면 그는 곧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지병과 공포, 좌절, 굶주림이 70살 노인을 살려두지 않는다.

유병언을 둘러싼 여러 정황을 놓고볼 때 유병언 주변 인물들의 진술은 결코 사인 규명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 체포되거나 자진출두한 사람들의 진술만 보더라도 하나같이 자신의 유불리를 따진 지극히 절제된 말만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주변 인물의 입에서 나온 진술(특히 진술에서 나온 일자별 행적)은 일단 무시하고 수사의 방향과 초점을 다시금 다듬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양회종이 송치재 별장 인근 연수원에서 달아난 후 금수원에 들어온 것도 ‘모종의 임무를 마친 철수나 복귀 차원’이었는지, 아니면 ‘도피 중 발생한 돌발 상황 보고’를 위한 것이었는지 그 행적의 성격이 진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 등 국민들의 궁금은 갈수록 더해지는 형국이다.

인천지검 직원들이 23일 오후 검찰청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사용한 여행용 가방 2개를 공개하고 있다. 가방 안에는 현금 8억3000만원, 미화 16만달러가 들어 있었다. _ 연합뉴스


특히 유병언이 챙겼던 가방 1·2·3·4·5(6·7도 있을 수 있겠지만) 중 현금이 들어 있던 4·5 가방 외에 행방이 묘연한 1·2·3 가방 속에도 돈이 들었을 것이라는 관측은 오류로 보여진다. 만약 모든 가방에 돈이 들어 있었다면 굳이 가방마다 각각 다른 번호표를 붙일 필요도 없고 또 붙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습성이다. 가방마다(또는 몇몇 번호에) 다른 물건이 들었을 때 쉽게 찾기 위해 번호표를 붙이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다. 또한 중요도가 높은 물건일수록 우선순위를 앞번호에 두는 경우가 많다. 분명 1·2·3의 가방 속에는 유병언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차명재산 목록이나 비자금 조성 및 사용 내용과 같은 비밀장부가 들어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유병언의 도피로와 조력자들과의 접촉 방법 등을 볼 때 누군가 유병언이 도피를 시작한 직후부터 차명재산 목록 등 비밀장부의 존재를 알고 도피로를 집요하게 추적·관리해왔을 가능성이 크다. 가방 1·2·3이 의도된 사람 또는 특정 집단의 수중에 들어간 직전 또는 직후에 그들에 의해 자의 반 타의 반 노숙자로 위장되어 이끌려 나온 후 버려졌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사립탐정 학술 차원의 가설이긴 하지만 향후 없어진 유병언의 가방 1·2·3이 누구의 수중으로 들어가 있는지를 밝히는 시점이 유병언 사인 수사의 종착점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김종식 |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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