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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총기 난사와 같은 끔찍한 대형사건은 물론 구타·가혹행위 소식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자식이 이미 제대했거나 언젠가는 입대할 자식을 둔 부모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보면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은 크고 작은 병영 내 불상사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셈이다. 12명의 사상자를 낳은 최전방 일반전초(GOP) 총기 난사 사고와 ‘관심병사’ 2명의 영내 자살사건 등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국민들을 충격과 비탄에 빠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4월 경기 연천지역 육군 28사단에서 발생한 윤모 일병 사망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병영 내 구타 및 가혹행위에 대한 병사들 설문조사 결과(2013) (출처 : 경향DB)

엊그제 군 수사당국이 밝힌 윤 일병 사건의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이토록 참혹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말문이 막힐 뿐이다. 윤 일병은 지난해 12월 부대에 전입 온 이후 사망하기까지 5개월 동안 이모 병장 등 선임병들에게 입에 담기조차 꺼려지는 가혹행위를 당했다. 선임병들은 윤 일병에게 밤새 기마자세로 서서 잠을 못 자게 하는가 하면 치약 한 통을 통째로 먹이기도 했다. 군기를 잡는다며 윤 일병을 눕혀 물을 부어 고문하고 바닥의 가래침을 핥아 먹게 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윤 일병은 이 같은 가혹행위를 상습적으로 당하다가 결국 이 병장 등에게 얻어맞고 음식물이 기도에 막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가해자인 선임병 4명이 구속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가혹행위가 어떻게 5개월이라는 긴 시간 내내 아무런 제지 없이 저질러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휘관들이 이를 몰랐다 하더라도 크나큰 직무유기에 해당되겠지만 정황상 알고도 묵인·방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연대장과 대대장 등 간부들에게 보직해임 등 징계조처만 내리고 사건을 어물쩍 마무리하려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간부들이 언제 어떤 형식으로 보고를 받았는지, 보고를 받았다면 어떤 조처를 취했는지 등을 철저히 수사해서 범법행위가 드러나는 대로 단죄해야 한다.

또한 군 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래도 군대에는 구타와 가혹행위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구시대적 인식 자체가 자리 잡을 수 없도록 병영문화 자체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군대에서 병사들의 인명과 관련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부모들의 심정을 군 당국은 조금이라도 헤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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