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사생활 보호 불감증을 경계한다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덤이 18세기 말 무시무시한 건축물 하나를 고안해 내었다. 팬옵티콘(panopticon)이라는 이름의 건축물인데, 이 건축물의 특징은 중앙 꼭대기에 밖에서는 안 보이지만 그곳에서는 나머지 공간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통제실이 설치돼 있다는 것이다. 즉 중앙 꼭대기의 감시자는 밖에서 전혀 안 보이지만 피감시자는 항상 자기가 감시자에 의해 관찰되고 있을지 모르는 불안감을 갖게 되는 건축물이다.

벤덤은 이 아이디어를 특별히 교도소용으로 고안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감시자와 피감시자 사이에 단순히 보이고 안 보이는 것만으로 권력관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감시자는 피감시자에 대해서 교도소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정보를 확보할 수 있고, 피감시자는 감시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양자 간의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이 권력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권력관계에서 약자가 잃어버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사생활의 박탈이 자유의 박탈로 이어진다.

자유를 중요시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공동체에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개인의 사생활 보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개인의 사생활이 없어진다는 것은 그 개인에 대한 모든 정보가 공개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어 그의 교우관계, 과거 애인의 존재와 숫자 및 연애 패턴, 그의 음식 취향, 선호하는 여행지, 정치적 성향, 부모와의 관계, 부부관계, 재산 상황, 재테크 수준,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 지식수준, 심리적 상태 등등 개인적인 모든 것이 낱낱이 알려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인 자유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며 누군가에 의한 완벽한 통제가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있을 수 없는 일이 우리가 편리를 추구하고,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 도입한 정보통신 기술의 진화로 인해 어쩌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머지않아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술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빼앗는 존재는 조지 오웰이 쓴 소설 <1984>에 나오는 국가라는 빅브러더가 아니라 정보통신업체 및 이를 활용하는 단체와 국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빅브러더이다. IT기술의 발달과 이를 이용한 정보통신업체 및 관련업체들은 이 기술을 사용하는 개개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남겨 놓은 흔적을 수집해 이들의 사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남겨 놓은 자주 방문하는 웹사이트 흔적, 모바일 기기의 위치 정보가 알려주는 행동반경과 자주 가는 곳, CCTV가 잡아 놓은 영상기록, 텍스트 문자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는 정치성향 및 사고 패턴, 주식투자 기록으로 파악하는 투자성향, 백화점 카드 및 신용카드 사용 기록을 보고 알 수 있는 소비 패턴과 기호 상품, 전산화된 병원 진료 기록으로 알 수 있는 건강상태, 그리고 진화하는 스마트 기술에 의해 분석되는 개인의 수면패턴, 심리상태, 성욕, 식욕, 습관 등은 모두 사생활 정보다.

이러한 방대한 양의 사생활 정보가 수집되고 종합되고 분석되는 소위 빅데이터의 세상이 오면 장점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그 데이터가 악용되고 오용될 소지가 장점 못지않게 존재한다. 그 단점이 바로 개인의 사생활 침해이고 그에 따른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거나 조작되는 것이다. 빅데이터의 세상은 생활을 편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 주지만 개인 정보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될 소비를 하게 되고, 하지 말아야 할 투표를 하게 되고, 누군가가 우리의 약점을 잡아서 자유를 구속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그 누군가가 국가가 될 수도 있다. 자유가 가장 중요한 덕목인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사생활 보호는 아주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양보할 수 없는 인류보편적 덕목이다. 우리가 금전적 이익과 편리함만을 좇다가 안전 불감증에 걸려 세월호 사고가 터졌는데, 또 다시 금전적 이익과 편리함만을 좇다가 사생활 보호 불감증에 걸려 대형사고가 터진다면 우리는 학습능력이 없는 국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