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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 초청 강연에서 “현금이 유입되지 않는 방식을 연구해봐야 할 것”이라며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를 거론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지난 10일 “벌크캐시가 들어가지 않는 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성공단 재개와 관련해 “국제 제재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검토작업에 나서고 있는 것은 주목된다.

강 장관과 고위 당국자의 발언은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해선 안보리 대북 제재의 벌크캐시(대량현금 대북이전)금지 조항을 우회해야 하는 만큼 임금지불을 현물로 하는 방안이 남북 간에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조항은 2012년 12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2087호부터 등장했지만 개성공단은 이후에도 정상 가동됐다. 하지만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전면중단하면서 ‘개성공단=대북 제재 대상’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물론 2017년까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지속되면서 제재가 더 촘촘해졌고 북측과의 합작사업 금지(안보리 2375호)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2018년 12월 26일 오전 북한 개성시 판문역에서 열린 남북 동서해선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 참석자들이 개성공단 내 식당에서 오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대북 제재의 취지를 감안하면 개성공단 재가동 논의는 늦은 감이 있다. 대북 제재건, 개성공단이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13개월 넘게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해 한반도 정세를 개성공단 중단 이전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게다가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에 이어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과 영변 핵시설 폐기 방침까지 제시한 상황이다.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을 뿐 안보리가 대북 제재의 변경을 논의할 요건은 충족된 셈이다.

이 시점에서 벌크캐시가 거론된 것은 ‘북한에 유입된 현금이 핵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우기 위한 것이다. 그 자체가 근거박약하지만 오해가 쌓인 것도 현실인 만큼 남북이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을 재개할 용의를 밝힌 것도 ‘돈이 문제라면 다른 수단을 찾아보자’는 뜻으로 읽힌다.

개성공단 재가동은 북·미 협상과 무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협상 결과만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개성공단 재가동이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플러스가 될 것임을 국제사회에 설명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개성공단 재가동만을 의제로 하는 ‘원포인트 남북회담’을 열어 북한의 의중을 확인하고 창의적인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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