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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논쟁’이 다시 뜨겁다. 그가 새해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앞자리를 차지한 게 계기다. 정치권 안팎은 오래전 ‘정치 중단’을 선언하고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만 정치와 가는 끈을 남긴 그의 ‘강제 귀환’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유 이사장은 여전히 “정치 안 한다. 여론조사에서 빼달라”고 해명하며 연일 고개를 가로젓는다.

‘장외 우량주’ 등 많은 표현들이 존재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그가 정치를 부인하고 거부할수록 오히려 주가는 더 뛰는 기현상이다. 과거 특유의 독설 때문에 유 이사장과 불화했던 여권 일각조차 그를 반길 정도다. ‘유시민 현상’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가 결국 대권에 나설지 아닐지는 아직 한참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을 테지만, 정치권 안팎의 이편이든 저편이든 몹시 궁금해하는 일이다.

이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몇 가지 유 이사장과의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 볼수록 다면적인, 하나로 규정이 어려운 그의 개성들이 담긴 장면들이다.

“공화국을 위해 뭔가 해야 할 것 같다.”

2002년 가을 잘나가던 칼럼니스트 유시민이 돌연 ‘절필’을 하고 정치권으로 떠날 때의 변(辯)이다. 당시 민주당 노무현 대선후보가 ‘대통령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의 탈당 등으로 몹시 흔들리던 때다. 국민 경선 후보 지킴이로 나서면서 이를 ‘공화국’ 차원 문제로 본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게 개혁국민정당(개혁당)이다. 투사적 면모가 강하던 40대 초반 열혈 시절 유시민이다.

“정치를 너무 재미없어한다.”

2004년 초가을 무렵 국회의원 시절 한 측근의 전언이다. 그는 그 가을 참모들을 졸라 서울 근교로 소풍을 떠났다. 당시는 지지부진한 정당개혁 때문에 몹시 힘들어하고 재미없어하던 때다. 그는 “그만두고 편하게 살고 싶다”고 했고, “지방대 교수가 좋을 것 같다”고도 했다. 전형적인 낭만적 자유주의자의 모습이다. 17대 ‘탄핵 총선’ 후 과반 여당(열린우리당) 내 ‘난닝구 빽바지’ 논쟁에서 보듯 독설과 논란을 몰고 다니던 ‘논쟁적 유시민’ 시절이다.

“쇄빙선처럼 경계를 깨는 게 노무현 대통령이고 차기 후보는 유람선이다.”

2005년 겨울 사석에서 만난 그가 ‘노무현식 차기 관리’란 화제에 내놓은 선문답 같은 비유다. 진보와 보수, 정치와 정책의 경계를 깨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이면 그 새로운 정치환경을 완성해야 하는 게 차기 후보 몫이란 설명이었다. 당시는 실패한 ‘대연정’론에 진보진영이 분노하던 때였다. 그 때문에 그의 말은 ‘정치적 경호실장’의 ‘노무현을 위한 변명’으로 들렸다. 그 며칠 뒤인 2006년 1월1일 그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인사청문회 당시 ‘2 대 8 가르마’로 상징되는 가장 얌전하고 비논쟁적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 이때다. 대중이 낯설어한 유시민이기도 했다.

결국 관심은 그의 미래다. 지금 상식적인 결론은 ‘유시민 이사장 본인도 모를 것’인 듯하다. 정치에 관심 있는 이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 아직 3년 넘게 남은 다음 대선을 예측한다는 게 실상 무망하다. 특히 한국 정치처럼 역동적인 영역에선 더욱 그렇다. “정치는 을이 되는 일”이라는 본인의 절절한 거부반응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시대의 변화와 정치적 민심의 요구에 개인 의지가 오롯이 관철되기는 쉽지 않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의 ‘운명’처럼 이는 그간 한국 정치사가 증명한 바다.

하지만 굳이 어느 쪽이든 베팅하라고 한다면 개인적으론 ‘정치, 안 하지 않을까’ 쪽에 걸 듯하다. 안 하는게 좋겠다는 바람이거나, 잘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아니다. 지금까지 모습이 왠지 ‘그랬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건 저를 쪼징한 건가요, 조진 건가요.”

마지막 영상이다. 거침없고 가시 박힌 직선어법으로 “여의도 정치에선 실패했으나, 거리의 정치에선 성공했다”는 비난과 평가가 뒤섞인 반응이 그의 상징이던 시절이다. 독설과 선동, 그 반대편에서 중도·개혁을 이야기하던 낭만적 자유주의자의 ‘두 모습’을 근거로 그를 노무현 시대 정치 언어를 연기하는 ‘배우’이자 ‘광대’로 규정한 기사에 대해 측근에게 건넨 반응이었다. 이 기사로 ‘유팬(유시민 지지자)’들의 거친 항의를 받았지만, 정작 그는 뜻밖에 ‘쿨’했다. 독설의 권리를 누리는 듯한 행동만큼이나 자신을 향한 평가에도 개의치 않는 ‘쿨한 유시민’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정치가 중요하지, 요구받는 정치는 그리 무겁게 느끼지 않는다. 투사는 될 수 있어도, 국정의 책임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실상 그의 ‘항소이유서’의 용감함이나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발랄함은 모두 그의 자유로움에서 연유한다. 그 스스로 정치의 내용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고, 호불호도 뚜렷하다. 그만큼 정치적 비판과 요구에 대한 맷집도 세다.

그는 여전히 한 시대의 특정한 한 흐름을 대변하는 ‘광대’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 시대 모든 목소리들이 관심사는 아닌 듯하다. 노 전 대통령 8주기를 앞둔 2017년 5월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는 선언은 이런 그의 개성과 뜻이 모두 함축된 토로다. 유시민을 담기에 ‘정치’라는 그릇은 너무 엄격하고 지루하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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