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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경찰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매일 수천건의 개인 의료정보를 제공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건보공단이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공단은 2010년 1월부터 올 6월까지 가입자 정보 435만여건을 검·경에 넘겨준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2600여건에 이른다. 제공된 정보 중에는 낙태수술이나 암수술 같은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운 내밀한 정보가 수사기관 손에 들어갔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검·경은 형사소송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근거로 법원의 영장 없이도 건강보험 가입자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건보공단이 이 같은 요청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단은 그럼에도 외부기관에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별도 지침까지 두고 적극적으로 협조해왔다고 한다. 수사기관에는 이토록 저자세인 반면 당사자에겐 정보 제공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다니 기막힐 뿐이다. 도대체 건보공단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적법성 여부도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2012년 서울고법은 차모씨가 자신의 동의 없이 경찰에 개인정보를 넘긴 네이버 측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포털업체들은 ‘수사기관 요청 시 통신사업자가 응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검·경에 가입자 정보를 제공해왔는데, 법원이 ‘의무조항이 아니다’라며 포털업체의 손배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후 주요 포털사는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정보를 요청할 경우 넘겨주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이러한 판결 취지에 비춰볼 때 일반 정보보다 더욱 민감한 의료정보 제공행위는 불법으로 결론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최근 카카오톡과 밴드 등을 둘러싼 ‘사이버 검열’ 논란으로 시민의 불안감이 크다. 여기에 개인정보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의료정보가 대량 유출된 사실까지 드러났으니 불안감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관련법을 개정해 법원의 영장 없이는 개인 의료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또한 의료정보가 수사기관에 제공된 뒤에는 당사자에게 통지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별도로 건보공단 직원들이 가입자 정보를 무단 열람·유출하는 행위도 반드시 중징계와 형사고발 등으로 엄단해야 할 것이다. 헌법 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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