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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선사암각화가 있는 ‘한국인의 성소(聖所)’ 울산 대곡천에서 실험하려는 카이네틱댐(임시 물막이 시설) 설치는 중지 또는 재검토해야 한다.
카이네틱댐이란 공법은 지난해 물에 잠기는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 논란이 사회갈등 43대 현안의 하나로 부각될 때, 한 일간지를 통해 처음 소개됐다. 그로부터 전격적으로 수몰방지 대안으로 채택돼 조만간 대곡천에서 실험할 참이다.
한국인이라면 이 실험을 두렵게 봐야 한다. 그 이유는 대곡천에 3㎞ 간격으로 있는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가 국보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 문화재의 공익·경제적 가치가 연간 4900억원이어서만도 아니다. 이곳은 ‘한국인의 성소’이기 때문이다. 성소는 숭고한 곳이다. 성소는 사람의 배꼽과 같고, 사회의 사원과 같다. 대곡천은 한국인 전체의 배꼽이며 사원이다.
그 근거는 암각화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예술·종교·학술의 원형을 간직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선사암각화 복제본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에 걸었고, 또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 걸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새로운 눈으로 봐야 할 것은 암각화뿐 아니라 두 암각화가 조성된 지형 전체를 하나의 큰 제단(祭壇)으로 보는 관점이다. 두 개의 암각화가 있는 대곡천 지형은 신비롭고 장엄하다. 영월의 동강 같은 물돌이 지형이 여러 굽이 겹쳐 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율동과 반복이 기하학적 미를 보여준다.
둥글게 팬 깊은 계곡은 울림현상이 뛰어난 야외음악당과 같다. 그림이 새겨진 바위산은 거대한 이등변삼각형을 이루고, 암각화가 새겨진 암반 캔버스는 황금비율에 가깝다. 선사인들이 왜 이곳을 주목했는지 느끼게 된다. 또 후세대인 겸재 정선이 이곳까지 찾아와 그림을 그린 까닭도 이해된다.
그리고 유서 깊은 절이 대부분 물을 건너는 곳에 조영돼 있듯 반구대와 천전리 두 암각화도 계곡을 건너도록 돼 있다. 물길을 통해 세속과 신성의 경계를 가르는 원형을 보여준다. 대곡천 문화는 700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이곳이 선사인의 제단이었던 것은 명백하다. 이 제단의 성격은 한국 전체로 봤을 때 단군신화보다 앞서며 민족사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산신숭배보다도 앞선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 신라 때는 원효가 머물며 불교서적을 집필했다. 조선시대에는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뜬 구곡이 경영된 유교의 도장이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 기독교 기도원도 조성됐다. 이곳이 모든 신앙이 집결되고 배양된 신성한 장소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울산 팸투어에서 트래블리더들이 대곡천 암벽의 암각화를 바라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곳이 한반도 예술의 원형이라는 점은 넓게 연구되고 알려졌다. 최근에는 동북아역사재단장석호 박사에 의해 손을 앞으로 모으고 기도하는 오늘날 모든 신앙인의 자세의 원형이 암각화의 샤먼에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아울러 고래류를 정리한 분류학을 비롯, 고래가 물방울을 뿜어올리는 양태를 관찰한 동물행동학, 새끼를 업은 고래 그림에서는 잡아서는 안될 금기를 나타내는 민속학, 멧돼지의 오장육부를 들여다보는 해부학, 나무를 휘어 배를 만든 조선공학, 각종 도형을 배열한 기하학 등 여러 과학의 첫 장을 연 곳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암각화와 주변이 제단이며 성소라는 개념이 뚜렷해진 것이다.
순례와 경배의 대상이 된 이곳에 카이네틱댐이란 낯선 공법이 적용되려고 한다. 울산대 토목학과 조홍제 교수는 “위험한 시도”라며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성소에는 금기가 있다. 오랜 덕목과 금기를 잘 지키는 것이 세련된 행동이고 문화인으로 대접받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대곡천을 엄중히 다루지 않으면 한반도 문화의 정수가 유린된다.
김한태 | (사)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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