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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맞서 경제 보복에 나섰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1일 스마트폰과 TV용 반도체 등 제조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대상 품목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기판 제작에 쓰이는 감광제인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불산(에칭가스) 등으로, 앞으로 한국에 수출하려면 90일가량 걸리는 당국의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본 정부는 그간 한국을 우대국가로 분류해 수출 허가를 면제해 왔는데, 앞으로는 일일이 허가를 받게 하겠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의 태도로 미뤄 아예 허가를 내주지 않는 ‘금수조치’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번 조치는 그간 한·일관계에서 지켜져온 원칙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다. 그동안에는 정치·외교적 갈등을 빚더라도 경제활동은 보장하는 ‘정경분리’가 대체로 지켜져 왔다. 물론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본이 한·일 통화스와프 규모를 축소했고, 최근 한국산 수산물에 대한 검역조치를 강화하는 등 조금씩 훼손돼 왔다. 하지만 이처럼 기업 활동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조치는 ‘금지선’을 넘는 망동(妄動)이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답지 않은 치졸한 태도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조치를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28일 G20 공식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를 나눈 뒤 걸어나가고 있다. 오사카 _ 연합뉴스

일본이 이번 조치에 대해 일절 사전설명이 없었던 걸 보면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아베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8초 악수’로 끝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과거사 문제와 무역을 결부시켜 보복하는 것이 아베 총리가 G20 회의에서 그토록 강조한 ‘자유무역’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달 하순의 총선을 앞두고 한국을 때려 표를 얻겠다는 얕은 심산도 엿보인다.

이번 품목은 일본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이어서 수출 규제가 장기화하면 한국기업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일본은 통신기기 및 첨단소재의 수출을 통제하는 추가 보복조치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이 이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대응조치 방침을 밝힌 것은 당연하다. 장기적으로는 부품소재의 수입선 다변화, 국산화 노력을 통해 ‘탈(脫)일본’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다만 경제보복 조치가 길어져 업계부담이 커지지 않도록 외교적 해법 모색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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