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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장관행이 실제로 어른거린다. 그해 여름, 자기검열부터 했다. 벌써 ‘조국 법무장관’을 변호하려 동원되는 여권의 옹호논리가 기시감이 드는 데다, ‘내로남불’을 경계해야 하는 건 언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8년 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최측근 권재진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내정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공정한 법 집행의 책임자이자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관리해야 할 법무장관으로 곧바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내정설이 제기될 때부터 임명까지, 경향신문의 세 차례 사설은 이 기조하에서 “불통인사” “헌법 모독”을 비판하고 철회를 촉구했다. 다시 보니 일부 매체를 빼곤 비판의 기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민정수석에서 법무장관으로 직행, 최측근 임명에 따른 법집행의 공정성 논란, 최악의 회전문 인사, 총선관리의 중립성 등이 공유된 비판의 지점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5월20일 국회에서 열린 ‘경찰개혁의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열린 당정청 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직행, 대통령의 최측근, 9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 등 조국 법무장관(설) 앞에 놓인 조건은 8년 전과 흡사하다. 서울중앙지검장에서 검찰총장으로 발탁된 윤석열 후보자와 당시 역시 서울중앙지검장에서 검찰총장으로 직진한 한상대의 평행까지 감안하면, ‘조국-윤석열’ 조합의 데자뷔는 어쩔 수 없다. 여권이 내세우는 ‘인물의 차이’와 ‘의도의 선의’로 돌파하기에는 “그해 여름 네가 한 말”이 너무 강렬하다. 더욱이 그것은 여전히 온당하다. 조국 법무장관 카드는 “어떤 정부에서도 지켜야 할 원칙과 좋은 관행”을 허물 만큼, 우위의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그해 여름’을 소환해보자.

2011년 7월 권재진 법무장관 내정에 당시 우윤근 국회 법사위원장과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들은 긴급성명을 내고 “민정수석이 곧바로 법무장관에 임명된 적은 역대 정권에 한번도 없으며 측근인사 회전문 인사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인사”라며 “법치국가의 기본틀을 흔드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김진표 당시 원내대표는 “선거중립을 내팽개치고 어떻게든 유리한 판을 짜보겠다는 불순한 의도”라고 규탄했다. 현 청와대 주역들의 어록도 선명하다. 노영민 당시 원내수석부대표(현 대통령비서실장)는 “청와대가 특유의 오기를 부리는 것 같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차마 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성토했다. 아무리 사정 변경을 내세운들 이 지당한 비판의 잣대를 조국 법무장관 카드가 벗기 쉽지 않다. 

사실 그때 야당만이 아니었다.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도 반대론이 드셌다. 소장파는 집단 성명을 냈고, 지도부에서도 남경필·나경원 최고위원 등이 비토론을 폈다. “선거관리 주무장관으로서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인사” “오기 인사”, 비판의 날도 퍼렜다. 소장파 정태근 의원은 ‘5년 전 한나라당이 한 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아전인수하지 말고 역지사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6년 문재인 전 민정수석(3개월 전에 물러나 ‘전직’ 이었다)의 법무장관 기용에 반대했던 사실을 환기하며 “야당일 때와 지금의 말이 다른 것은 공당이길 포기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자기편을 옹호하는 데도 지켜야 할 금칙”, 그나마 그들은 지켰다.

그해 여름의 귀결은 “군사독재 시절에도 차마 하지 못한 일”의 현실화로 끝났다. MB는 ‘권재진 법무장관’을 강행했다. 당시 청와대와 친이계 의원들의 비호논리가 있다. 대통령의 고유한 인사권, 능력이 우선, 장관도 대통령의 참모, 대통령의 신임은 장관 일을 하는데 장점 등등이다. 아마도 ‘조국 법무장관’ 카드가 실제화될 경우, 야당을 중심으로 거세질 반대에 대한 여권의 반박 또한 그 어간 어디쯤에 머물 터이다. 다른 건 ‘기승전-조국’으로 상징되는 검찰개혁의 연속성이라는 명분일 터이다. 하지만 사법기관 개혁은 국회 패스트트랙을 통해 법제화 단계로 넘어갔다. 이제 ‘국회의 시간’에서 조국 법무장관의 존재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묻게 된다. 계속될 정치적 논란을 감수하고, 여당 및 청와대 참모들의 도저한 ‘자기부정’을 강제할 만큼 ‘조국 법무장관’은 의의를 갖는 것일까.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임명을 이번에도 실행하면 관행이 된다. “독재 시절에도 차마 하지 못했던 일”은 “개혁정부도 한 일”이라는 면죄부가 씌워진다. 김선수 현 대법관은 그해 여름 이렇게 갈파했다. “청와대 수석으로 대통령을 보좌했던 사람을 검찰 조직을 관할하는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검찰의 중립적인 기소권 행사라는 사법개혁 방향에도 어긋나고, 수사권 독립이라는 대전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 당위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검찰개혁 등을 앞세워 조국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직행을 밀어붙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 다른 ‘오기 인사’로 비치기 십상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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