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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 법정에 섰다. 전씨는 회고록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벌어진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기소됐다. 5·18이 일어난 지 39년 만에 역사의 현장인 광주 법정에 선 그를 바라보는 심경은 각별하다. 그가 두 차례의 재판 불출석에 “광주에서는 공평한 재판이 이뤄질 수 없다”는 등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며 10개월 가까이 재판을 거부해온 것도 이런 의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법정에 선 것도 법원의 강제구인영장에 굴복한 결과일 뿐, 제 발로 나왔다고 보기 어렵다.

전씨 측은 “국가기관 기록과 검찰 조사를 토대로 회고록을 쓴 것이며 헬기 사격설의 진실이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다”라면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어 “5·18 당시 광주에서 기총소사는 없었으며 기총소사가 있었다고 해도 조 신부가 주장하는 시점에 헬기 사격이 없었다면 공소사실은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광주 희생자를 모독한 것도 모자라 또다시 거짓과 궤변으로 일관하는 작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3월 12일 (출처:경향신문DB)

그간의 증언과 자료에 비춰보면 그가 5·18 때 공수부대를 광주에 투입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최종 책임자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인 헬기 사격만 하더라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 조사와 검찰 수사 결과 광주 전일빌딩 10층 외벽 등에서 외부에서 날아든 탄흔이 다수 발견됐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헬기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감정했다. 헬기 사격을 증언한 조 신부는 민주화의 증인으로서 ‘광주의 양심’으로 불릴 만큼 시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분이다. 그런 성직자가 학살 주범에게 고인이 된 뒤에도 ‘거짓말쟁이’ ‘사탄’이란 모욕을 들어야 하니 이런 불의가 없다.

전씨는 1997년 내란목적 살인죄 등으로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데 이어 특별사면됐다. 국민대화합이란 명분으로 김영삼 정부가 대다수 반대여론을 외면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게 풀려났음에도 그는 그동안 단 한번도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 되레 자신은 5·18과 무관하다는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회고록에서는 자신이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했다. 그의 부인 이순자씨는 “전두환은 민주화의 아버지”란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런 5·18 폄훼가 결국 ‘북한 특수부대설’ 같은 5·18 망언으로 이어지며 지금까지 희생자와 유족의 상처를 후벼파고 있는 것이다. 5·18 망언 징계를 질질 끌며 진상조사위 발목을 잡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행태도 다를 바 없다. 어쩌면 우리는 끝까지 단죄해야 할 역사적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결과, 어둠의 역사가 다시 발호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유일한 방법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엄격한 단죄뿐이다.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 등 여러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은 아직 진행형이다. 전씨는 88세 인생 말년에 5·18 희생자와 광주, 시민 앞에 참회할 마지막 기회마저 걷어찼다. 오히려 온 시민에게 정신적 테러를 가하고 있다. 그에게선 털끝만 한 진정성도 찾아볼 수 없다. 이번에는 추상같은 사법적 단죄와 함께 역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서 수십년간 광주를 고립시키고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장해온 망언과 궤변이 더는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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