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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때 누사덕(婁師德)이라는 재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길에서 남이 욕하면 못 들은 척 지나가고, 지인이 찾아와 누가 당신 욕을 하더라 하면 “저 말고 누사덕이 또 있나 보죠. 내가 맞더라도 굳이 전해주는 건 그 욕을 제가 두 번 듣게 하는 일입니다” 하고 끝냅니다.

훗날 그의 동생도 높은 자리에 임명됩니다. 형제가 나란히 출세한 것이지요. 그러자 누사덕은 동생을 불러 관심과 시기도 두 배가 될 터이니 각별히 몸가짐을 조심하라 이릅니다. 동생이 걱정 말라면서 “누가 제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잠자코 닦아 내겠습니다” 하니 누사덕이 말합니다. “그게 내가 염려하는 바니라. 침 뱉은 사람 앞에서 침을 닦으면 그 사람 기분을 건드릴 것 아니냐. 침이야 놔두면 금방 마르니 그대로 두거라.”

침 맞은 얼굴쯤 저절로 마른다는 타면자건(唾面自乾)의 고사입니다. 어떤 모욕이나 봉변을 당하든 꿈쩍도 않는, 무심하고 의연한 처세술을 말하지요. 우리라면 누가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잠자코 닦고만 있겠습니까? 당장 마주 침을 뱉어주든가 멱살을 잡겠지요. 막장드라마에서 가장 흔한 모욕법은 맞은편 얼굴에 물을 끼얹는 겁니다. 모욕의 고전이자 뻔한 클리셰죠.

물세례 모욕은 옛날에도 있었습니다. ‘개구리 낯짝에 물 붓기’ 속담이 있으니까요. 사람 얼굴에 물 끼얹으면 대판 싸움 납니다. 개구리 낯짝엔 물 끼얹어도 무반응 꼼짝을 않습니다. 보호색 띠고 함부로 움직이면 위험에 노출되는 걸 개구리도 아는 겁니다.

욕 전해 듣고 속 좋을 리 없지만, 벌컥 반응해봐야 아까운 시간과 내 기분만 날립니다. 못 들은 척 가만있는 건 호구가 아니라 태연자약의 승자입니다. 상대는 욕하고 다니다 언젠가 죽어나니까요. 그러니 막장 기대하고 욕 전한 사람을 김새게 해줍시다. 누가 뭐라 하든 ‘뭐 어쩌라고’ 나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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