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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묻고 싶은 게 있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관련 고소 사건을 수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박관천 경정이 작성했다는 ‘찌라시’의 유출자와 유출 과정을 밝혀내는 일인가. 온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는 일인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검찰의 행보 때문이다.

검찰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소속 경찰관 2명을 체포했다. 이들로부터 문건을 넘겨받은 한화그룹 직원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했다. 검찰은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 동향’ 문건 외에 언론에 보도된 다른 문서의 유출 과정까지 모두 수사할 것이라고 한다. 유출 문제에 관한 한 전방위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비선 개입 의혹의 실체를 파헤치는 데는 소극적이다. 검찰은 처음부터 ‘십상시 회동’의 실재 여부에만 수사를 집중해왔다. 이 회동이 없었다면 문건은 허위이고, 그렇다면 문건에 나오는 다른 의혹은 확인할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이야기일까. 문서의 일부 내용이 거짓이면 문건 전체가 거짓이 될까. 더욱이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문건에는 애초 폭로된 것보다 많은 정보가 포함돼 있음이 속속 드러나는 터다. 일부 내용은 실제 정황과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요컨대 ‘판’은 계속 커지는데 검찰은 애써 외면하는 형국이다. 의혹의 초점인 정윤회씨가 오늘 출석할 예정이지만, 검찰의 의지가 없다면 정씨 조사도 해명만 듣는 통과의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국정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가 검찰 출석 16시간이 지난 11일 새벽 2시경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청사를 빠져나오고 있다. 정씨는 이번 사건의 배후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알 것"이라고만 말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출처 : 경향DB)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서 “고발된 사건을 중심으로 수사하되, 수사 단서가 있고 범죄의 단초가 되면 수사 대상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건 유출·명예훼손 사건을 먼저 마무리한 뒤 다른 의혹으로 넘어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수사 기법상으로 맞는 말일지 모르나 검찰의 양태에 비춰보면 믿기 어렵다. 검찰은 세계일보 보도가 나오자마자 고소한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을 열흘이 넘도록 조사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과 김기춘 비서실장의 조사 없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은 불가능하다.

검찰의 난처한 처지를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문건 내용을 “루머”(12월1일) “찌라시”(7일)로 규정한 터다. ‘수사 가이드라인’을 넘어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수준 아닌가.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왜, 무엇을’ 수사해야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출자가 경찰관이든 누구이든 사건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본질은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여부다. 이 부분을 밝혀내지 못하는 한 의혹은 덮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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