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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에 관한 청와대 감찰 보고서의 진위는 아직 객관적으로 규명된 바 없다. 아마 그런 불투명성은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다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검찰에 “루머”라고 수사 지침을 내렸다는 이유만으로도 세상 사람들은 검찰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 대통령은 새로운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어제 “터무니없는 얘기들”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일축하며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설사 유출 과정이 밝혀지고 보고서가 허위라 해도 박 대통령은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이 피해자를 자처하며 면책될 일이 아니라는 걸 세상이 다 안다. 게다가 더 중요한 문제인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과 통치상의 심각한 결함까지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대 박지만 갈등’을 부인했다. 그러나 문고리 권력 3인방 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대통령 대 장관, 장관 대 차관 간의 다층적 갈등을 드러내는 국정 난맥상이 왜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해명조차 못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1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가 시작되기 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_ 청와대사진기자단


문고리 권력 3인방은 총리도, 장관도 아니고, 비서실장, 청와대 수석도 아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 총리, 장관도 못하는 권력을 행사했다는 박근혜 정부 인사의 증언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부터, 장관, 차관, 국장, 과장, 산하단체, 정윤회씨까지 복마전처럼 뒤엉킨 문화체육관광부 사태조차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다. 이는 박 대통령 자신이 임명장을 준 장관·수석이 아니라, 청와대 살림이나 대통령 일정·수행을 맡는 실무자에 불과한 3인에게 어떤 법적 권한도 자격도 없이 국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방치한 결과다. 그건 1인 통치, 비밀주의가 빚은 국정 파행의 적나라한 실상이다. 정상적인 정책결정 과정을 박 대통령 스스로 무너뜨리지 않았으면 발생할 수 없는 자충수이기도 하다. 그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그런데 여전히 그는 “소모적인 의혹 제기와 논란으로 국정이 발목 잡히고 있다”고 억울해했다. 그리고 “나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면서 집권당도 흔들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국정, 특히 인사 문제를 정상적인 절차로 다루었으면, 여러 차례 약속한 대로 인사개혁을 했으면 일어날 수 없는 사태였다는 걸 그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따라서 대통령이 이번 계기로 무언가 깨닫는 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건 집권당도 마찬가지다. 집권의 책임을 공유하고 있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힘들게 이끌어 오시는 대통령 각하께 박수 한번 보내자”고 했고 곧 우렁찬 박수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이에 화답하듯 박 대통령은 “찌라시에 흔들리는 대한민국이 부끄럽다”고 했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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