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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가장 큰 갈등은 여-야 사이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지금의 여야로 이루어진 ‘제1의 정당체계’와, 이로부터 벗어나 다른 정치가 가능했으면 하는 ‘제2의 정당체계’ 사이의 갈등이 더 크고 중요하다. 한국 정치의 최대 다수파는 누구인가? 기존의 여-야 정치가 바뀌기를 바라는 ‘비판적이고 정치적인 무당파들’이다. 전통적인 정치 무관심층과는 매우 다른 이들 ‘제3시민’이 바라는 ‘미래의 정치’가 제2의 정당체계라 할 수 있다.

제1의 정당체계란 무엇인가? 두 개의 거대 정당으로 이루어진 독과점체제이다. 하나는 ‘국가 파생 정당’으로서 집권당이 있다. 이승만 정권이 만든 자유당, 박정희 정권이 만든 공화당, 전두환 정권이 만든 민정당에서 보듯, 정당이 정부를 만든 것이 아니라 비(非)정당의 길로 국가를 장악한 정권이 만든 정당이다. 그렇기에 이들에게는 늘 보이지 않는 국가 프리미엄이 있다. 다른 하나는 국가 파생 정당의 다른 짝으로, 그런 국가로 상승하려는 욕구로만 정의되는 제1야당이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이 당은 자체의 사회적 기반도, 대중 조직도, 이념적 정체성도 없다. 그들 내부는 매우 이질적인 생각과 개성을 가진 의원들이 모여 경쟁하는 엘리트카르텔에 가깝다. 하나의 조직이자 팀으로서의 면모는 약하다. 그간 이 당은 집권세력에 대한 ‘두려움의 동원’을 통해 제3당 이하의 정당들과 그 지지자들이 가진 열정을 흡수함으로써 양당제의 독과점 이득을 공유해왔다.

제3시민은 누구인가? 그간 투표는 기존 정당에 했지만, 그들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차선이라도 추구하고자 전략적 선택을 했던 시민들이다. 다양한 항의와 압력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했으나, 늘 적극적 정당 대안을 갖지 못했던 시민들이다. 진보정당을 지지했지만 그들이 기대만큼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해 안타까워하면서 어찌할지 고민하는 시민들도 있다. 안철수 현상이 새 정치를 가져다주길 기대했지만, 그가 제1의 정당체계에 포섭됨으로써 실망했던 시민들도 있다. 이들이 이념적으로나, 계층적으로 어떤 존재인지는 불확정적이다. 이 문제는 중요하다. 이는 안철수 현상을 이해하는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필자는 안철수 현상을 만든 시민들을 기존 여야 사이의 ‘중도’로 보거나, ‘반정당적’이고 ‘정당기피적’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이라고 본다. 정당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제1의 정당체계에 대한 것이었고, 그들의 진정한 기대는 제대로 된 정치세력에 대한 바람이었다고 본다.

비판적 제3시민의 집합적 정체성 역시 앞으로 어떤 정당이 어떤 이념과 정책 대안으로 이들의 열망을 조직해내는 데 성공할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 길에서 누가 승리할까? 누가 이들을 무정형의 의견 덩어리에서 하나의 조직화된 의견을 가진 집합적 실체로 바꿔낼 수 있을까?

'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 주최로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치개혁과 정당혁신을 위한 집담회'가 열리고 있다. (출처 : 경향DB)


기존 정당은 아니라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대안정당을 조직하는 일은 그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안철수 신당도 조직화의 단계에서 좌절한 그 길에서 제3의 또 다른 도전 역시 성공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정당 만들기라는 엄청난 ‘조직화의 비용’을 감당할 세력은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불만에 찬 제3시민은 있되 그렇다고 제3정당의 가능성은 크지 않은 현실이다. 그렇기에 특단의 비책 같은 것은 없다. 기존 정당들은 스스로의 정치에너지를 최적화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미 있는 당원-지지자-활동가-정치엘리트 등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통합하는 데에서 실력을 보이는 정당이라면 기회는 있다. 대안정당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기존 정당의 실패만을 부각하려 해서는 안 된다. 기존 정당의 실패에 대해 그들의 책임도 크며, 그들 역시 조직화에서 실력을 못 보여준다면 달라질 것은 없다.

제3시민의 기대를 붙잡는 일에서 제1의 정당체계와 제2의 정당체계는 제대로 경쟁해야 한다. 그것은 누가 정당을 정당답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고 오래 걸리는 과업인지를 이해하는 세력만이 정치발전에 기여할 거라 본다.


박상훈 | 정치발전소 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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