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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간 데이트폭력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경기 남양주에서는 남자친구에게 맞은 40대 여성이 의식불명에 빠졌다. 앞서 서울에서는 20대 남성이 여자친구를 마구 때려 치아 5개를 부러뜨리고 이를 말리는 사람들을 트럭으로 위협한 사건이 발생했다. 광주에서는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를 사귄다고 의심해 모텔에 감금하고 폭력을 휘두른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고, 지난달 충북 청주에서는 20대 남성이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 일어났다.

올 상반기에만 4565명이 ‘데이트폭력’으로 검거됐다. 폭행, 스토킹, 온라인 성범죄 등 주로 여성들을 겨냥한 ‘젠더폭력’은 갈수록 심각한 이슈가 되고 있으나 가정폭력처럼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격리해 보호하는 조치도 없고 강력 대응할 법적 근거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경찰청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으로 지난해 46명이 사망했다. 8일에 한 명꼴이다. 가해자 8367명이 입건돼 449명이 구속됐다. 데이트폭력은 주로 폐쇄된 사적 공간에서 일어난다. 피해자의 신고가 없으면 잘 드러나지 않아 실제 발생 건수는 경찰 집계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에 신고가 접수돼도 폭행 흔적 등 증거가 명확하지 않으면 연인 간 ‘사랑싸움’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한번에 그치지 않고 반복·지속되는 경향을 보이므로 가정폭력 사건처럼 가해자의 접근을 막아 2차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재로서는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다. 협박이나 주거침입 등이 없는 경우엔 가해자가 피해자를 따라다니며 괴롭혀도 1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는 것이 전부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데이트폭력 처벌 특별법’이 발의되긴 했지만 관련 상임위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인 데이트폭력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젠더폭력’으로 볼 수도 있다. 미국은 여성폭력방지법에 따라 데이트폭력 가해자를 체포해 격리하고 피해자에게 접근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데이트폭력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상대 연인의 전과 정보 조회를 허용하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연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범죄자의 77.6%는 전과가 있다. 정부가 1일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등을 중심으로 관계부처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한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정부는 데이트폭력 외에도 몰래카메라, 온라인 성범죄 등 여성 상대 젠더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8월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서 실질적 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젠더폭력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번 기회에 데이트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을 높이고 이를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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