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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온라인 게시물의 명예훼손 여부를 자체 판단해 포털 측에 삭제를 요청하고 ‘특정 단어’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경향신문이 입수한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단 범정부 유관기관 대책회의’ 비공개 자료에서 드러났다. 검찰은 지난달 18일 열린 이 회의에서 주요 포털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대한 선제적 대응 방침을 밝혀 ‘사이버 검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언론에 공개한 보도자료에는 “유언비어·명예훼손의 주요 타깃으로 지목된 논제와 관련된 특정 단어를 입력·검색해 실시간 적발하겠다”는 등의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치적 의도를 부인하던 검찰 역시 내부적으로는 시민의 반발을 예상하고 축소 발표했음을 보여준다.

유관기관 대책회의에서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이 포털업체와 핫라인을 구축해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고, 문제된 글의 명예훼손 여부 등 법리 판단을 신속히 해 삭제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시정조치나 법원 판결이 나올 때만 게시글을 삭제하도록 한 현행 정보통신망법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 법 집행기관이 실정법을 뛰어넘어 초법적 조치를 공언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검찰의 의도는 주요 수사 사례로 제시한 6건에서 더욱 명백해진다. 3건은 세월호 참사 관련 루머, 나머지는 청와대 비선라인 ‘만만회’ 의혹 등 대통령과 관련된 글이었다. 결국 실시간 적발하겠다는 ‘특정 단어’는 ‘(사라진) 7시간’ 등 대통령이나 정부 비판과 연관된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회의 자료에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 발언을 적시함으로써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카카오톡과 공권력의 사이버 사찰에 항의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13일 서울 한남동 다음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화내용 및 이용자 정보를 공권력에 제공한 의혹을 받고 있는 다음카카오의 해명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이버 망명’으로 이어질 만큼 거센 반발에도 아랑곳않는 검찰의 태도다. 어제 국정감사에 출석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을 못 드린 게 아니냐’는 질문에 “저희도 아쉽다. 사이버 사찰은 지금까지도 없었지만, 앞으로도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정부 부처는 물론 주요 포털과 카카오톡 관계자들까지 모아놓은 채 사실상의 검열 방침을 밝히고도 ‘설명 부족이 아쉽다’니 뻔뻔스럽지 않은가. 검찰은 당장 유관기관 대책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모두 취소하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청와대도 검찰권을 활용해 ‘온라인 공안국가’를 만들려는 생각을 접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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