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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그제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하기에 앞서 같은 당 하태경 의원이 대표 발의한 ‘대한민국 헌법 제8호에 근거한 긴급조치로 인한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에 서명했다. 지난 10월16일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유신헌법 긴급조치로 인한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과 내용이 대동소이한 데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국회의원 신분으로 공동 발의한 마지막 법안인 만큼 ‘긴급조치 보상법’의 국회 입법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신헌법 피해자 명예회복법안 제출
(경향신문DB)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적절치 않은 입법이다. 두 법안의 취지는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고 부당한 피해를 회복하며 미래적 국민화합과 민주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법안의 골자는 ‘긴급조치피해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를 설치해 피해자 접수·심의·선정·보상 등을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로 인정된 자에 대해서는 특별사면과 복권, 전과기록의 말소, 복직·복학 등을 가능케 하고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이런 방식과 내용으로는 입법 취지 가운데 어느 하나도 이룰 수 없다고 본다. 긴급조치 자체에 대한 법적 판단을 유보한 과거사 청산은 공염불에 불과하고, 심사를 통해 일부에게 지급하는 몇 천만원으로 피해가 회복될 리 없으며, 피해 당사자들이 반발하는 마당에 국민화합은커녕 오히려 갈등만 초래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발전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
현재 긴급조치 피해자 250명가량이 법원에 재심을 신청해놓고 있다. 이 가운데 24명의 재심이 진행되고 있고, 속속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긴급조치 자체가 위헌이라는 법원의 판단에 의거해서다. 이들은 긴급조치 보상법을 거부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당하게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명예를 회복하고, 기존 법률인 국가배상법에 따라 피해를 회복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마치 국가가 선심을 쓰는 듯한 특별법에 의해 심사를 받고 보상 대상이 되는 것은 유신체제에 저항했던 자신들에 대한 명예 회복이 아니라 명예 훼손이라는 생각에서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긴급조치 보상법의 입법 취지를 살리고 싶다면 새로운 법으로 대체하는 게 옳다. 피해자에게도 사법부에도 부담을 지우는 개별적인 재심 과정의 고충을 입법부가 해결해주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그 점에서 전해철 민주통합당 의원이 대표 발의를 준비 중인 ‘유신헌법하 긴급조치 위반 유죄판결의 일괄 무효를 위한 법률안’이 그 취지에 부합하고 현실적이라고 본다. 사법부의 판결을 입법부가 일괄적으로 무효화하는 것은 3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지만 독일의 ‘국가사회주의 형사재판 불법판결 파기를 위한 법률’과 같은 입법 선례가 있는 만큼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긴급조치 보상법은 판결을 무효화한 다음에 정 필요하다면 그때 고려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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