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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울북부지법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임모씨 등 4명이 청구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당연한 것이고 예상됐던 바지만 37년 만에 내려진 긴급조치 9호 위반 사건에 대한 첫 재심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고 하겠다. 사법부는 이미 긴급조치 1호와 4호의 위헌 결정에 이어 지난 8월2일 이들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임으로써 9호도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린 터였다. 재판부는 이들에 대한 무죄 선고와 함께 과거 재판부의 잘못된 판결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긴급조치 9호가 어떤 것인가. 1975년 5월 발령된 이 조치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했다. 이 조치를 위반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거나 그 표현물을 제작·배포·판매·전시하는 것은 물론 소지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미수하거나 예비·음모한 자도 똑같이 취급했다. 이 조치를 포함해 이에 따른 주무장관의 조치를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할 수 있고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헌법재판소가 유신헌법 긴급조치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을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장준하 선생 등을 탄압한 1호나 민청학련을 단죄한 4호와 달리 긴급조치 9호는 ‘긴급한 조치’를 요하는 특정한 사안도 없는 가운데 발령해 1979년 10·26사태로 원인 무효가 될 때까지 5년 가까이 ‘일상적 조치’로 지속했다. 유신체제의 결정판이자 여러 긴급조치 가운데서도 가장 고약했으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하물며 목회자의 기도와 설교, 교원의 수업과 학원강사의 강의, 친구끼리 주고받은 대화와 편지, 재수생이 쓴 시, 택시에서 한 취중발언까지도 문제가 됐다. 당시 고교 교사였던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부터 아파트 경비원에 이르기까지 800명이 넘는 학생·시민이 이 때문에 수갑을 차고 감옥살이를 했다. 이 가운데 많은 이가 인생을 망쳤고, 상당수가 그 후유증으로 지금껏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들의 재심 청구가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약 200여명이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사는 억지를 쓴다고 해서 그 행위가 없던 것이 되고 공과가 뒤바뀌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유신 재평가 논란’은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세상이 어둡다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과거를 직시하고 과가 있다면 이를 분명히 정리한 뒤에 비로소 공을 논할 수 있고 미래를 기약할 수도 있다. 사법부의 이번 판결은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누가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해 구속됐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것조차 긴급조치 9호 위반이었던 헌정사 최고 암흑기의 속살은 아직 손바닥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을 비판하면서 우리의 과거사 왜곡을 방관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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