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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박근혜 정권’ 시절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2013년 12월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장인 차한성 당시 대법관을 공관으로 불러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전범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논의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와 관련, 검찰은 14일 김 전 실장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당시 회동에 배석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 외교부 당국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지난 2일 진행한 외교부 압수수색에서는 관련 문건을 확보했다고 한다.

사법농단 사태 이후 이 사건을 비롯해 KTX 승무원 해고무효소송, 통상임금 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 등 10여건의 사건에서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정권 간의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됐지만 명확한 물증이나 진술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확보된 진술과 문건은 이들의 재판거래를 입증할 강력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당시 차 전 대법관에게 강제징용 소송의 판결을 미루거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승태 대법원은 그 대가로 법관의 해외공관 파견 재개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2012년 5월 원심을 깨고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이후 해당 기업들의 재상고로 2013년 8~9월 사건이 대법원에 다시 올라왔다. 대법원은 2012년 첫 판결 때와 쟁점이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판결을 확정짓지 않고 5년간 미루다 지난달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김 전 실장이 차 전 대법관과의 회동 때 요구한 대로다.

수십만명의 강제징용 피해자 중 현재 생존자는 3500여명으로 추산되는데, 대부분 고령이다. 이들은 해방 이후 70년 넘게 피눈물을 흘리며 이 판결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2012년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최근까지 최종 결론이 나지 않으면서 이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대법원 재상고심에 계류 중인 해당 사건의 원고인 징용 피해자 9명 중 7명이 세상을 떠났다. 향후 수사에서 박근혜 정권과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로 최종 판결이 미뤄진 것이 확인된다면 반민족·반인륜적 범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법원은 그동안 검찰이 이 사건과 관련된 전·현직 대법관과 판사들에 대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모조리 기각했다. 이번 사건이 재판거래일 가능성을 매우 높게 만드는 진술과 증거가 확보된 이상 법원도 진상규명과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 김 전 실장과 차 전 대법관의 ‘윗선’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관여됐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들에 대한 철저한 검찰 수사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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