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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한 후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연내 서울 답방을 약속했다.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은 육·해·공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넘어 군사력 감축까지 포함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 비무장지대(DMZ) 내 GP(감시초소) 시범철수, 공동유해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 즉각 실천에 옮길 조치에도 구체적으로 합의했다. 남북은 또 올 연말까지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고, 이산가족들이 상시로 만나는 상설면회소도 설치하기로 했다. 하나같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는 조치들이다. 이보다 더 큰 한가위 선물이 있을 수 없다.

무지개차에 탑승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8일 평양 순안국제공항을 출발해 백화원 초대소로 이동하며 북한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공식화이다. 분단 이래 북한 최고지도자의 첫 남한 방문이 성사되면 남북 정상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정상회담 정례화가 가시화된다. 한반도가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비핵화 의지를 담보하는 효과도 있다. 남측 내 반대 여론과 경호 우려를 뛰어넘은 김 위원장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 실질적으로 가장 큰 진전을 이룬 것은 군사분야 합의다. 남북이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고 모든 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하기로 한 것은 사실상의 남북 간 종전합의이자 불가침선언이다. 남북은 이번 합의로 육·해·공 전 공간에서 우발적 충돌을 막는 완충지대를 설정했다. 이는 군사분계선 5㎞ 이내 지역과 서해 5도 및 북방한계선(NLL) 내 훈련 등을 금지함으로써 군사 긴장을 결정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이다. 군사분계선 1㎞ 이내 GP 11개를 각각 철수하고 JSA 내 지뢰제거, 초소 내 인원·화력 철수 등 합의도 한반도 평화를 추동할 실천적 조치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5년 만에 처음으로 군비축소가 시작되는 셈이다. 합의대로 진행된다면 북한의 핵무기에 의한 위협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로 인한 군사적 긴장까지 해소하는 단계로 진입한다. 이는 더 이상 남북 군사대결로 치르는 비용이 사라진다는 의미가 된다.

남북 간 도로와 철도 연결은 한반도 경제지도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사업이 시작되면 남북 간 사회간접자본 건설 협력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국토교통부 등은 반드시 연내 착공을 성사시켜야 한다. 대북 제재와 무관한 남측 구간부터 공사한 뒤 북한과 연결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개소에 대해서는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상봉 정례화를 실현한 뒤 이산가족의 화상 상봉과 편지 교환까지 성공한다면 이산가족의 염원은 상당 부분 풀린다고 볼 수 있다. 다방면에 걸쳐 남북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담보하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이 이번 평양공동선언의 의미다.

하지만 가야 할 길도 멀다.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설정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수두룩하다. 동·서해 경제·관광특구 조성과 한강하구 골재채취 등은 대북 제재가 해결되어야 추진이 가능하다.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에 앞서 남측 내 여론도 정리해야 한다. 후속 조치가 내실있게 진행돼야 남북관계가 진정한 의미의 불가역적 상태로 돌입한다. 각계각층의 지원과 협조가 필요하다. 특히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들은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남북 간 군사분야 합의를 두고 “북한은 달라지지 않는데 우리만 무장해제하는 꼴”이라며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을 향해 상호주의를 외치면서 정작 상호주의를 어기는 자가당착적 행태다. 뜨거운 여름을 나는 과정에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가 없을 리 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 천둥과 벼락 안에서 한반도평화가 영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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