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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여성들의 눈과 귀가 헌법재판소로 쏠리고 있다. 헌재가 서기석·조용호 재판관 퇴임(18일) 이전 낙태죄 헌법소원에 대한 선고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12년 4(합헌) 대 4(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내려진 지 7년 만이다. 헌재가 심리 중인 법조항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269조 1항과 낙태시술한 의료진을 처벌하는 270조 1항이다. 지난 30일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주최 집회에는 1500여명이 모여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전면 비범죄화, 포괄적 성교육과 피임 접근성 확대,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 낙인과 차별 없는 재생산권 보장도 요구했다.

30일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위 사진)와 광화문네거리 원표공원에서 열린 낙태반대 집회(아래 사진)에서 각각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낙태(임신중지·임신중단)를 둘러싼 논의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선택권’ 대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띠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낙태 문제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넘어 건강권·행복권·재생산권 등 삶 전반을 규정짓는 핵심적 인권 이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가톨릭국가 아일랜드가 지난해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죄를 폐지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임신중단 합법화’가 이어지는 배경이다. 국내에서도 낙태에 대한 인식이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9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필요할 경우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77%(남성 79%, 여성 75%)로 나타났다. 특히 20대와 30대는 각각 85%, 94%의 압도적 비율로 ‘필요시 낙태 허용’에 찬성했다.

지난 주말 무궁화호 열차 화장실과 인천의 주택가 등에서 신생아 유기 사건이 잇따랐다. 영아유기가 끊이지 않는 주된 사유는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육아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이다. 임신과 출산을 당사자가 온전한 자유의사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면, 포괄적 성교육과 피임 접근성이 강화된다면 이 같은 비극은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민주국가에서 임신을 국가가 강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신의 중단, 즉 낙태 역시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헌재에 전달했다. 우리는 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제는 여성의 몸을 국가가 통제·관리할 수 있다는 인식과 결별할 때다. 헌재가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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