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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일자 지면기사-

고영한·김신·김창석 대법관이 1일 퇴임했다. 모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임명된 이들이다. 퇴임사에서 고 대법관은 ‘사법의 권위’를 역설했다. 김신 대법관은 ‘상고제도 개선’을 호소했다. 김창석 대법관은 ‘법치주의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다. 법원을 떠나며 당연히 할 수 있는 말들이다. 사상초유의 사법농단이 없었다면 말이다. 3인의 퇴임사가 전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시민의 충격과 분노를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심 어린 반성도 후회도 묻어나지 않는 퇴임사에 절망감을 느낀다.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 퇴임식에서 고영한 대법관이 퇴임사를 하고 있다. 뒤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보인다. 연합뉴스

이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지난달 31일 추가로 공개된 ‘양승태 법원행정처’ 문건 196건을 접하고도 재판거래는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 고 대법관은 특히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사법농단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단초가 된 국제인권법연구회 무력화 조치의 장본인이다. 재판거래 의혹 대상으로 거론되는 KTX 해고승무원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의 주심을 맡았다. 부산 법조비리 은폐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그는 퇴임사에서 “제가 관여한 모든 판결에 대해선 학문적·역사적으로 비판과 평가가 이뤄질 것”이라며 “모두 제가 짊어질 몫”이라고 했다. 작금의 사태에 최소한의 책임감이라도 느꼈다면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검찰에 제출하고, 출석 요구가 있으면 성실히 응하겠습니다.’

남아있는 대법관들도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들은 떠난 3인과 함께 ‘재판거래 의혹은 근거 없다’는 입장문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재판거래 의혹을 뒷받침하는 정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수백건의 문건과 관련자들의 진술이 쏟아지는 형국이다. 오불관언하는 대법관들의 모습은 머리를 모래에 파묻은 타조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타조가 머리를 파묻는다고 위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법원 판결과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이 분리돼 있다는 해명을 믿을 사람은 더 이상 없다.

대법관들은 재판거래 의혹 제기가 합리적 의심에 근거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사죄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의혹 사건에 관여한 대법관들은 실정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판결과 관련된 진실을 밝혀야 한다. 대법관들이 이 같은 요구를 외면한다면 더 큰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미 양승태체제에서 임명된 대법관 전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터다. 퇴임 대법관들이 말한 ‘사법의 권위’와 ‘법치주의에 대한 믿음’을 되찾는 일은 전·현직 대법관들 스스로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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