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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국회·언론 등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압박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7월31일 공개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미공개 문건 196개를 통해서다. 문건 내용은 엘리트 법관들이 작성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이다. 사법행정은 뒷전인 채 공작에 골몰했던 법원의 모습은 분노를 넘어 참담함을 자아낸다.
국회 관련 문건을 살펴보면, 2015년 당시 행정처는 국회 법사위 의원들의 개별적 현안을 분석해 ‘맞춤형’ 설득 방안을 세웠던 것으로 확인됐다. 상고법원 반대론자인 정의당 서기호 의원을 향해선, 서 의원이 ‘법관 재임용 탈락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변론을 종결해 ‘심리적 압박’을 주는 방안이 거론됐다. 다른 의원들에 대해서도 대법관·고법 부장판사 등 고위법관과 전관 변호사들을 로비스트로 활용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수도권 외 지역구를 둔 의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상고법원 지부’ 설치를 검토하자는 내용까지 등장한다.
언론 관련 문건들에는 ‘기사 거래’ 시도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나온다. 행정처는 조선일보를 집중 공략 대상으로 설정하고 변호사 상대 설문조사, 좌담회, 내부 필진 칼럼과 외부 기고문 게재 등을 구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변호사 설문조사와 관련해선 “조선일보에 상고법원 광고 등을 게재하며 광고비에 설문조사 실시대금을 포함해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적시했다. 일련의 문건이 생산된 이후 조선일보에는 상고법원 도입에 우호적인 기사들이 실렸다. 조선일보는 “문건은 행정처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조선일보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문건의 내용도 심각하지만, 저변에 깔린 인식과 표현도 저열하고 조야하다. 행정처는 상고법원 추진에 무관심한 여론과 관련해 “일반 국민들은 ‘내 사건’은 대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들”이라며 “이기적인 국민들 입장에서는 상고법원이 생겼을 경우 어떠한 장점이 있는지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상고법원 어젠다에 총력을 모아야 한다면서 “외부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동원하기도 했다. 평소 정의와 인권을 외치던 법관들이 주권자를 깎아내리고, 조직의 이익을 위해 전쟁까지 들먹이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문건을 작성한 판사들은 법복을 입을 자격이 없다.
뒤늦게 공개된 문건들을 보니 현 법원행정처가 왜 그토록 공개를 꺼렸는지 짐작할 만하다. 기존에 제기된 의혹 외에 대국회·언론 로비 시도까지 드러날 것이 두려워서였을 터다. 안철상 행정처장은 지난 5월 특별조사단장 자격으로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발표한 이후 재판거래 의혹을 계속 부인해왔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 협조를 약속한 뒤에도 검찰의 자료 제출 요구에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안 처장이 자료 제출을 지휘하는 사법행정 책임자로 적합한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검찰은 추가 공개된 문건 내용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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