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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이 대통령 비판 전단을 살포하는 사람에게 임의동행을 요구하고 불응 시 현행범으로 체포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전단지 살포 등 행위자 발견 시 대응요령’ 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문서를 보면, 건물 옥상에 올라가 대통령이나 정부를 비난·희화하는 전단을 뿌리거나 페인트 등으로 건물에 비방성 낙서를 한 경우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12월부터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전단 살포가 잇따르자 이 자료를 일선에 내려보냈다고 한다. 이제 낙서도 마음대로 못 하는 나라를 만들 셈인가.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과잉수사에 할 말을 잃게 된다. 경찰은 당장 문서를 폐기하고 사과해야 한다.

‘문제의 전단’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지난달 25일 서울 신촌역 일대에 뿌려진 전단에는 박근혜 대통령·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진과 함께 ‘공직선거법 위반, 국가정보원법 위반 모두 유죄 판결’ 등의 문구가 실려 있었다. 원 전 원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 결과를 담은 것이다. 모든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내용도 전단으로 만들어 뿌리면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다는 논리인가. 경찰이 어처구니없는 지침을 내려보낸 데는 정권의 의지가 작용했을 것이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 사례를 보면 짐작되는 바가 있다. 인권위는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표현의 자유”라며 제지해선 안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했다. 반면 경찰의 대통령 비판 전단 수사에 대해선 침묵 중이다. 옥상에서 떨어지는 종이 몇 장이 북한의 총격보다 위험하다는 말인가. 이중잣대라는 표현을 쓸 수준도 못되는 졸렬한 작태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2주년인 25일 서울 마포구 신촌역 부근 거리에 국정원의 대선개입 등을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이 떨어져 있다. _ 연합뉴스


과거 독재정권 시절, 반정부 유인물을 뿌리거나 화장실 벽에 낙서하는 일은 구속을 각오해야 하는 거사였다. 서울경찰청의 지침은 2015년의 대한민국을 ‘그 시절’로 퇴행시키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과 정부는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이 겁을 준다고 비판과 풍자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실제 경찰의 ‘현행범 체포 방침’이 보도된 후에도 서울 마포구에서 대통령 비판 전단 200여장이 뿌려졌다고 한다. 수십년 전 사라진 전단을 되살린 건 다름 아닌 ‘불통 정권’이다. 정권이 달라지지 않는 한 전단 살포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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