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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어제 원청기업의 하청 노동자 보호책임을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난 1월 발표한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혁신을 위한 종합계획’의 후속 입법이다. 원청 책임을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한 점 등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없진 않으나 선진국에 비해 2~4배 높은 사고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획기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며 내놓은 개선안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개정안은 원청기업이 산재 예방 조치를 해야 하는 유해위험 장소를 현행 20곳에서 하청 노동자가 작업하는 원청기업의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했다. 이를 위반했을 때 처벌 규정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미만의 벌금에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5배 상향 조정했다. 도급 인가 기간도 최대 3년으로 해서 재인가를 받도록 했다. 이는 유해위험 업무의 도급을 전면 금지한 원안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되는 산재 사망사고를 막을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노동자의 ‘작업중지 요청권’을 강화한 것도 의도한 것과 달리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 현행 산안법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작업을 중지시킬 권리는 사업주에게 있다. 다만 노동자가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면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했다. 개정안은 사업주의 작업중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을 때 사업주에게 추가 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작업중지 요청권이나 사업주 신고제도는 현장에서 유명무실하다. 노동자 개인이 불이익이 예상되는 그런 행동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자 대표나 안전 대표에게 작업중지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세월호 사태 이후에도 대기업에서 업종을 불문하고 후진국형 산재 사고가 끊이지 않는 구조적 원인이 대기업의 ‘위험 외주화’와 그에 따른 책임 회피라는 것은 더 이상 논쟁의 대상도 아니다. 유해위험 업무의 도급을 제한하고 원청 책임을 더욱 강화하는 등 개혁 강도를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작업중지권 조항처럼 정교하게 다듬을 부분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산재사망률 1위라는 오명을 이제는 벗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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